의회 권한 강화 사법부 축소
12일 치러진 터키 국민투표에서 헌법 개정안이 찬성 58%, 반대 42%로 통과됐다. 친이슬람노선을 채택하고 있는 중도보수 집권여당 정의개발당(AKP)의 입지가 한층 넓어졌다는 평가다.
이번에 확정된 개헌안은 1980년 쿠데타 발생 때 도입된 종전 헌법의 구시대적인 내용을 개선했다. 사생활 보호, 공무원 파업권 등 노조 단결권 확대, 여성과 아동의 권리보장 등의 내용이 담겼다. 터키 정부 발표대로 “유럽연합 가입에 맞춰 민주적 헌법을 채택한 것이며, 쿠데타의 비참한 유산과 단절한 것”이라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번 개정 헌법은 지난 50년 동안 4차례의 쿠데타를 경험한 터키에서 군부와 헌법재판소가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해산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 역점을 둬, 지나치게 사법부의 권한을 축소시켰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개정 헌법은 터키 최고법원인 헌법재판소와, 판검사 임명권을 가진 최고판검사위원회 등 사법부 최고기관의 정원을 증원해 의회 및 대통령의 정치적 임명권을 강화하고, 반헌법적 범죄(쿠데타)를 저지른 군장교에 대한 재판을 군사법정이 아니라 일반법정에서 다루도록 했다. 특히 헌재가 정당 해산을 판결해도 의회에 신설되는 정당해산검증위원회의 3분의 2 찬성이 있어야만 해산이 가능토록 해, 의회의 권한을 대폭 강화했다.
터키에서는 종교적으로 보수적인 이슬람사회를 지향하는 집권여당과 여기에 선을 그으려는 세속주의 성향의 사법부와의 대결 역사가 뿌리깊다. 터키 검찰은 2008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를 비롯해 여당 정치인들이 세속주의 원칙을 훼손했다며 집권 정의개발당을 해산하고 소속 정치인들의 정당 활동을 5년간 중단시켜야 한다는 소송을 헌재에 제기했다. 헌재는 해산 결정에 필요한 1표가 부족해 정의개발당은 파국을 면했지만, 정당 지원금을 삭감당한 바 있다. 1997년에는 정의개발당의 전신인 복지당에 대해 헌재가 해산 명령을 내림으로써 터키의 첫 이슬람 정부가 붕괴된 적이 있다.
이슬람주의 집권여당과 세속주의를 강조하는 군부·야당을 포함한 전통파워엘리트간의 대결로 관심을 모아왔던 이번 국민투표가 손쉽게 정부여당의 승리로 끝나면서, 정의개발당은 내년 7월 총선 이후에도 집권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류재훈 기자 hoon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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