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 표결로 특별법정 회부
2008년 금융위기뒤 첫 사례
한국선 ‘직무유기’ 무죄선고
2008년 금융위기뒤 첫 사례
한국선 ‘직무유기’ 무죄선고
아이슬란드 의회가 국가부도 사태 책임을 물어 게이르 하르데(사진) 전 총리를 기소하기로 결정했다. 하르데 전 총리는 2008년 세계 경제위기와 관련해 처벌에 직면한 첫 정치 지도자가 됐다.
아이슬란드 의회는 28일 하르데 전 총리를 직무태만 혐의로 특별법정에 회부할지에 대한 표결을 진행해 33 대 30으로 기소 결정을 내렸다고 <비비시>(BBC)가 전했다. 하르데 전 총리는 이 나라가 1944년 독립한 이후 대법관과 법원장 등으로 구성되는 특별법정에 회부된 첫 인사로, 유죄가 인정되면 최장 징역 2년에까지 처해질 수 있다.
전 총리에 대한 기소 결정은 국가 경제를 파탄 지경으로 몰아넣은 책임을 놓고 특별조사위원회가 작성한 보고서에 근거해 이뤄졌다. 특별조사위는 금융위기가 닥쳤는데도 아이슬란드 중앙은행이 국제결제은행에 5억달러의 상환기간 연장을 신청하지 않은 것을 하르데 전 총리의 여러 직무태만 행위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특별조사위는 “외환보유고 유지가 무엇보다 중요한 상황에서 이는 중대한 실책이었다”고 밝혔다. 아이슬란드 의회는 그러나 당시 재무장관이나 중앙은행장에 대한 처벌은 요구하지 않았다.
인구 32만명의 작은 나라 아이슬란드는 2008년 위기 전만 해도 높은 경제성장률과 소득, 낮은 실업률로 서유럽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았다. 그러나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가 불거지고 신용경색이 진행되면서, 2008년 10월 은행권 거품이 한꺼번에 터져 가장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국내총생산(GDP)의 6배에 이르는 부채를 안은 것으로 드러난 3대 은행은 정부에 귀속됐고, 아이슬란드 정부는 이듬해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았다. 경제성장률은 2009년 -8.5%까지 떨어졌고, 올해에도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된다.
독립당 당수로 2006년 집권한 하르데 전 총리는 부실한 경제 운용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던 2009년 1월 식도암 치료를 이유로 사임하고 정계를 떠났다. 그는 이번 결정은 “정치적 탄압”이라며 “법정에서 무죄가 입증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하르데 전 총리는 이달 초 “내가 총리로서 한 일이 은행들을 붕괴시킨 것은 아니며, 은행 붕괴를 막는 게 나나 다른 각료들의 권한 내에 있는 것도 아니다”라는 내용의 성명을 내기도 했다.
하르데 전 총리 사건은 정책적 판단과 행위를 사법의 잣대로 심판할 수 있느냐는 관점에서도 관심을 끈다. 한국에서는 1997년 외환위기 상황의 심각성을 김영삼 당시 대통령에게 축소 보고한 혐의(직무유기)로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와 김인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기소됐으나 무죄를 선고받은 바 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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