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영국 해군의 자존심인 항공모함 아크 로열이 모항인 포츠머스항에 정박해 있다. 영국 정부의 국방예산 감축계획에 따라 조만간 퇴역하는 아크 로열과 이곳에서 출격하는 해리어 전투기는 영국군 전력의 핵심이었다. 포츠머스/AP 연합뉴스
재정적자 해소 위해 4년간 국방예산 8% 삭감
병력 1만7천명 감축…‘국외파병 시대’ 저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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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해리어의 파일럿이고, 아프가니스탄에서 140번이 넘는 위험한 작전을 수행했습니다. 총리님, 저도 잘리는 겁니까?”
지난 19일 크리스 워드(37) 소령의 도발적인 질문을 받은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잠시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캐머런 총리는 20일 4년에 걸쳐 국방예산을 8% 삭감하는 것을 뼈대로 한 ‘전략적 국방·안보 보고서’의 하원 보고를 하루 앞두고 이날 영국 합동작전본부를 찾아 군인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은 이날의 풍경을 “캐머런은 매우 침착하고 자신감 넘치는 인물이지만 이날만은 불편하고 당황하는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고 촌평했다.
다른 부처에 비하면 감축 비율이 낮다고 하나, 그 특수성 때문에 국방예산 감축은 영국에서 가장 뜨거운 논쟁거리 중 하나였다. 영국 정부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상징이었던 항공모함 아크 로열과, 이를 모함으로 영국이 수행한 여러 전쟁에서 맹활약한 수직이착륙 전투기 해리어(총 80대)를 퇴역시키게 된다. 또 2015년까지 육군 7000명, 공군 5000명, 해군 5000명 등 1만7000명을 감축하고, 국방부 공무원도 2만5000명 줄이기로 했다.
이와 함께 탱크와 중화기도 전체의 40%인 405대를 없애고, 해군 호위함과 구축함도 현재 23척에서 2020년 19척으로 4척 줄일 예정이다. 독일에 주둔하고 있는 육군 2만명도 ‘냉전시대의 잔재’라는 판단 아래 고국으로 돌아온다. 영국은 이번 결정에 따라 국외에 3만명 이상의 병력을 배치할 수 없게 됐다. 2003년 이라크전쟁 때 영국의 파병 규모는 4만5000명이었다.
그러나 52억파운드 규모의 ‘퀸 엘리자베스’와 ‘프린스 오브 웨일스’ 등 2척의 항공모함 건조 계획은 계약 중단에 따른 손실이 더 커 예정대로 추진하기로 했다. 영국은 2020년 신형 전투기가 도입될 때까지 항공기 없는 항공모함을 유지하는 웃지 못할 상황에 빠지게 됐다.
영국 언론들은 이번 결정을 한 시대가 마침내 종언을 고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1985년 진수된 아크 로열은 세계 최초의 현대식 항공모함으로 1990년대 발칸전쟁과 2003년 이라크전쟁 등에서 위력을 발휘한 영국 해군의 자존심이었다. 아크 로열이란 명칭 자체가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한 영국 제독 프랜시스 드레이크의 기함 이름이기도 하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영국은 더 이상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작전을 수행할 수 없게 됐다”고 분석했고, <인디펜던트>는 “포클랜드제도 등 남대서양에서 작전을 수행할 때 다른 동맹국의 항공 지원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고 꼬집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캐머런은 영국이 세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갖는 국가라는 야심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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