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맘등 현실 반영못해
스페인에 때아닌 ‘성씨 논쟁’이 벌어졌다.
스페인은 전통적으로 신생아에게 부모 모두의 성씨나 중간명을 포함한 긴 이름을 지어준다. 시민권 등록에도 양성이 필요하다. 단, 아빠의 성씨가 엄마보다 앞선다. 스페인 총리도 ‘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 사파테로’라는 긴 이름을 가졌지만, 부계 성씨 로드리게스가 너무 흔해, 모계 성씨인 사파테로 총리로 약칭된다.
그런데 성(性)과 젠더(정치·사회적 맥락의 성관념) 문제에 진보적인 사회당 정부가 신생아의 성씨를 부-모 순서가 아닌 첫 글자의 알파벳 순서로 붙이고 기존 자녀들의 성씨 순서를 바꾸는 절차도 간소화하는 법안을 추진하면서 해묵은 논쟁이 재연되고 있다고 영국 <인디펜던트>가 5일 전했다.
프란시스코 카마뇨 법무장관은 “새 법안이 남녀평등 원칙의 논리적 귀결”이라고 말했다. 물론 현행 제도보다는 더 ‘정치적으로 올바른’ 태도다. 그러나 스페인 정부의 이런 진보적 구상은 오히려 가족과 젠더의 근본 문제를 건드리는 계기가 됐다.
한 여성권리단체 대표는 “남편에게 맞거나 심지어 살해당한 여성의 아이들에게 아빠의 성씨를 주는 것은 말도 안된다”며 양성등록법 자체를 문제 삼았다. 갈수록 늘고 있는 ‘싱글맘’들도 여전히 딜레마다. 자녀의 시민권을 등록할 때 아빠 몫의 성씨를 아무거나 만들어서라도 기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혼이 합법화된 동성애 부부나,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편부나 편모도 자녀의 이름을 짓기가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현지 일간 <엘파이스>는 리키 마틴이나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같은 유명가수들의 이름이 가짜 이름으로 선호된다고 전했다.
법무부 대변인은 “개정법안이 우리 시대에 더 부합한다”고 밝혔지만, 부모 양성 작명에 따른 근본 문제가 해결되지까지는 더 많은 시간과 대안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조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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