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원서 이겨 총리직 유지
시민들 퇴진 요구 격렬 시위
시민들 퇴진 요구 격렬 시위
실비오 베를루스코니(74) 이탈리아 총리의 정치적 생명력은 질겼다. 잇단 부패 및 성 추문과 집권당 내 분열 등으로 최대 궁지에 몰렸던 그는 14일 벌어진 상하원 신임투표에서 예상을 깨고 모두 승리해 총리직을 유지하게 됐다.
이날 먼저 열린 상원 투표에서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162 대 135(불출석 11명)로 가뿐하게 신임투표를 통과했다.
문제는 하원이었다. 애초 베를루스코니와 국민자유당을 공동설립했던 잔프랑코 피니 하원의장이 지난 7월 정치적 결별을 선언하고 정적으로 돌아서면서 집권당은 하원 과반수를 잃은 상태라 찬반이 팽팽할 것으로 점쳐졌다. 상하원 중 한곳에서라도 불신임되면 사퇴하겠다고 공언한 터였다. 결과는 314 대 311(불출석 2명), 단 3표 차로 운명이 갈렸다.
이날 하원 투표 도중 피니 의장의 지지 의원 가운데 한 사람이 베를루스코니에게 신임표를 던지려 하자 의회 안에선 한때 난투극이 벌어졌다. 지난주 베를루스코니가 의원들의 표를 매수하고 있다고 주장한 ‘이탈리아의 가치’당 대표 안토니오 디 피에트로는 투표 전 토론에서 베를루스코니의 검찰 출두를 요구하기도 했다. <에이피>(AP) 통신은 “베를루스코니는 이런 의혹을 부정했지만, 적어도 몇명의 의원들이 그에게 찬성표를 던지도록 설득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지난 9월의 신임투표에서 하원이 342 대 275로 신임안을 통과시켰던 데 비하면 베를루스코니의 의회 내 반대파는 상당히 늘어났다.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2013년 차기 총선 때까지 임기를 이어갈 토대는 마련됐지만, 이런 불안한 의석 분포로 조기총선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비판자들은 이탈리아의 미디어 및 건설업계 황제인 베를루스코니가 수많은 부패 혐의에도 20여년간 정치적 생명을 이어온 것은 그의 미디어 장악력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아에프페>(AFP) 통신은 이날 신임투표가 이뤄지는 동안 의사당 주변엔 경찰 수천명이 배치됐지만, 경찰의 저지를 뚫고 로마 중심부 등 이탈리아 곳곳에서 수만명이 베를루스코니 퇴진을 요구하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고 전했다.
김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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