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 개입’ 엇갈리는 각국
‘군사개입’ 현안회피 메르켈 비판 여론
안보리 결의 주도 사르코지는 지지 얻어
안보리 결의 주도 사르코지는 지지 얻어
다국적군 리비아 공습/ 통신원 리포트
프랑스 유력 일간지 <르몽드>는 지난 19일(현지시각) ‘국제적 책임에 직면한 베를린’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이례적으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리비아 군사개입’ 표결 과정에서 독일이 기권하는 등 줄곧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데 대한 지적이었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자리를 희망하는 국가라면, 뜨거운 국제현안을 회피할 게 아니라 국가 위상에 걸맞은 국제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유엔 안보리 결의와 리비아 군사개입은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주도적으로 관철시켰다. 물론 지상군 파병으로의 확전이나 군사개입의 장기화에 대해선 유럽도 국제사회와 마찬가지로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이와 별도로 메르켈 총리의 소극적인 태도는 유럽사회에서 상당한 눈총을 받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009년 리스본조약 발효 이후 정상회담 상임의장을 신설하고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의 역할을 강화했다고는 하나 아직 기대치만큼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유럽 차원의 중요한 외교 및 경제현안은 아직까지 프랑스·독일·영국 정상들이 주도해 왔다. 그런데 유럽 주도로 추진한 이번 군사개입에서 메르켈 총리가 그 역할을 사실상 포기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유럽연합 정치권은 이번 안보리 표결에서 독일이 미국·프랑스·영국과 입장을 달리해서 중국·러시아와 같은 편에 섰다는 것이 못마땅하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그러다 보니 사르코지에 대한 비판은 별로 없는 반면, 메르켈에 대해선 좌우를 막론하고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유럽의회 유럽녹색당 그룹의 좌파 정치인 다니엘 콘벤디트는 언론 인터뷰에서 “프랑스 외교는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다. 사르코지 대통령의 이번 결정에 일리가 있다”며 사르코지에게 이례적인 지지를 보냈다. 그는 “만약 군사적 개입이 단기간에 종결된다면 메르켈 총리는 아주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지식인들도 튀니지와 이집트 시민혁명 당시 프랑스가 보였던 소극적인 태도를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일반적이다.
유럽 각국 언론들의 비판은 더 직설적이다. 독일 경제지 <한델스블라트>는 “메르켈이 독일을 고립시켰다”고 비난했으며, 스위스 일간 <르탕>은 “메르켈이 외교적 입장 정리에 너무 많은 시간을 들였다”고 지적했다. 스페인 일간 <엘파이스>는 “유럽의 안보는 이제 프랑스-영국의 두 국가 축을 중심으로 굴러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메르켈 총리에게도 이유는 있다. 오는 27일 독일 남부 바덴뷔르템베르크와 라인란트팔츠 주의회 선거를 앞두고 리비아 군사개입 문제가 선거 쟁점으로 떠오르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독일 정가와 언론은 대체적으로 유럽 주도의 리비아 군사개입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지만, 밑바닥 여론은 정반대다. 이런 현상은 공격을 주도한 영국도 마찬가지다. 21일 영국 의회는 군사개입을 압도적인 표차로 승인했지만, 다음날 영국인들의 여론조사에선 군사개입 찬성이 3명 중 1명에 그쳤다.
파리/윤석준 통신원·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 유럽학연구소 박사과정 연구원 semio@naver.com
파리/윤석준 통신원·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 유럽학연구소 박사과정 연구원 semi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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