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7.01 19:36
수정 : 2005.07.01 19:36
“매년 300만 죽고 500만 감염”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 환자들 사이에도 ‘계급적 차별’은 존재한다. 유럽이나 북미에 살고 있는 환자들은 연간 1만 달러가 넘는 비용을 들여 발병을 억제하는 약물을 복용하며 일상생활을 누릴 수 있지만, 아시아·아프리카의 환자들은 변변한 의료지원을 받지 못한 채 철저히 고립된 상태에서 천천히 숨져간다.
한국국제협력단(총재 김석현)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래티시아 반 덴 아숨(55) 네덜란드 에이즈 담당 특별대사는 “매년 300만 명이 에이즈 바이러스 합병증으로 목숨을 잃고 있지만, 500만 명이 새로 에이즈에 감염되고 있다”며 “에이즈는 이제 지구적 차원의 문제”라고 말했다.
지난 달 29일 한국국제협력단 주최 ‘한국 개발원조의 발전방향’ 세미나가 열리는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만난 그의 입에선 에이즈 관련 각종 통계 수치가 버릇처럼 튀어 나왔다. 그에 따르면 남아프리카에선 에이즈로 인해 하루 1천여 명이 목숨을 잃고 있고, 스와질랜드에선 임산부의 42.6%가 에이즈 바이러스 보균자다. 일부 국가에선 지난 십수 년 동안 에이즈 때문에 평균 수명이 20~30년씩 낮아지기도 했다.
특히 20~40대 연령층에 에이즈 감염자가 집중돼있는 것은 장기적으로 심각한 파국을 부를 수 있다는 게 반 덴 아숨 대사의 경고다. 그는 “성적으로 가장 적극적인 연령층인 이들은 한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데다, 다음 세대를 생산해 내는 연령층”이라며 “이들 장년층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사회적 재생산 구조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1975년 네덜란드 국제개발협력기구(OIDC)에서 법률고문으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국제무대에 발을 디딘 그는 타이·라오스·버마·캄보디아 등 아시아와 남아프리카공화국·스와질랜드 등지에서 대사로 일하며 저개발국가 지원문제에도 남다른 관심을 보여 왔다. 3박4일의 짧은 방한 기간 동안 짬을 내 월드비전 등 국제 원조활동에 힘을 쏟고 있는 단체 활동가들을 만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서구 여러 나라들은 한국처럼 잿더미를 딛고 일어나 고도성장을 이룬 최근의 경험이 없다”며 “한국의 경제발전 경험을 저개발 국가들과 나눌 수 있다면, 새로운 공적개발원조 유형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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