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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프랑스, 부르카 금지 파동…톨레랑스 벗긴 ‘라이시테’

등록 2011-04-17 20:39수정 2011-04-17 22:36

헌법 1조 명시…종교 자유 인정하되 공적 영역선 배제
프 내부서도 “자의적 해석” “헌법적 가치 고려” 엇갈려
‘프랑스 정신’의 실종인가, 실현인가?

프랑스에서 ‘부르카 금지법’이 지난 11일 발효되면서 이 법의 정당성 논란이 끓어오르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머리부터 발목까지 온몸을 가리는 무슬림 여성 전통 복장인 부르카가 여성의 인권을 억압하고, 프랑스 공화국의 핵심가치인 ‘라이시테’라는 일종의 정교분리 원칙에도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프랑스의 무슬림 이민자들은 물론 이슬람 국가들이 이 법은 이슬람에 대한 편견과 차별에 기반한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란 외교부는 “어떤 종류의 가리개든 금지하는 것은 무슬림 여성들의 자유와 인권을 부정하는 것”이라며 반발했고, 요르단 무슬림형제단 지도자 함맘 사에드는 “무슬림들을 노린 새로운 십자군운동”이라고 비난했다.

외국 주요 언론들도 프랑스에서 무슬림 인구 500여만명 중 부르카를 입는 여성은 2000여명에 불과하다며 이 법이 이슬람에 대한 프랑스의 거부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정작 프랑스 안에서는 이 문제의 핵심은 보편적 인권으로서 종교의 자유와 공화국의 핵심가치로서 라이시테 사이의 충돌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라이시테는 종교를 국가 등 공적인 영역으로부터 철저히 분리시킨 프랑스혁명의 산물이자 공화국 프랑스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외국어로는 한마디로 옮기기 어려운 이 개념은 사적인 영역에서 종교의 자유는 주되, 모든 공적인 영역에서 종교의 자리를 엄격히 배제하는 것이다.

이는 프랑스 5공화국 헌법 1조에도 명시돼 있는데, 일부 프랑스인들은 ‘자유, 평등, 박애’에 라이시테를 포함해 프랑스 공화국의 4대 정신으로 부르기도 한다. 심지어 주에레투르 시청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의 관청 입구에는 자유, 평등, 박애라는 단어와 함께 라이시테가 병기돼 있다. 부르카 금지법이 지난해 의회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우파 의원들뿐 아니라 일부 좌파 의원들도 이 법안에 찬성한 것은 프랑스에서 라이시테가 가지는 ‘특수성’을 보여준다.


그런데 문제는 역사적 맥락에서는 종교가 국가에 미치는 영향을 제한해 공화국 시민들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탄생했던 라이시테가, 지금은 오히려 이슬람계 이민자들의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는 현실이다.

부르카 금지법 발효일에 파리 노트르담성당 앞 시위를 주도한 한 시민단체 대표인 하시드 네카즈는 “라이시테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는 사르코지 정부에 맞서 시민 불복종 운동을 전개하자”고 주장했다. 반면 파리 4대학의 장 폴 빌렌 교수는 “영국이나 독일 등 다른 유럽 국가들과는 달리 라이시테라는 엄격한 정교분리 원칙을 혁명적 가치이자 헌법적 가치로 유지해온 프랑스의 특수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라이시테에 무게를 둘 것이냐, 종교의 자유를 강조할 것이냐라는 고민은 법원에서도 엇갈린 판단으로 이어지고 있다. 부르카 금지법의 경우 지난해 최고 행정법원이자 정부 자문기관인 국사원에서 부정적인 의견을 내놨지만 헌법재판소에서는 합헌 판정을 받아 효력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인권법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유럽인권재판소에 이 문제가 상정되면 종교의 자유를 우선하는 판결이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런 상황에서 법을 집행하는 경찰은 상당히 난감해하는 표정이다. 프랑스 최대 경찰노조의 필리프 카퐁 사무총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이 법은 현실적으로 집행할 수 없는 법”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부르카 금지법 발효 첫날 경찰은 파리 시내 노트르담성당 앞에서 부르카를 입고 항의시위를 하던 여성들을 연행했지만 그 사유는 미신고 집회 때문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이들에게 벌금을 부과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같은 날 다른 장소에서 부르카를 입은 20대 여성은 이 법이 규정한 벌금 150유로(약 23만원)를 부과받았다.

파리/윤석준 통신원·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 유럽학연구소 박사과정 연구원 semi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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