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육군 대령 유리 부다노프(48)
장례식에 수백명 운집…극우당 “복권 추진하겠다”
체첸 소녀를 납치해 살해한 일로 처벌받은 전직 장교의 죽음을 둘러싸고 러시아 사회에서 극우 민족주의 바람이 강해지고 있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13일 러시아 모스크바 인근 힘키의 한 교회에서 전 육군 대령 유리 부다노프(48·사진)의 장례식이 군악대의 연주 속에 성대히 거행됐다고 14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그의 군 동료들뿐 아니라 극우 민족주의자 수백명이 운집해 꽃을 바치고 관에 입을 맞췄다고 전했다.
지난 10일 모스크바 중심가에서 괴한의 총탄에 쓰러진 부다노프는 탱크부대 지휘관으로 체첸공화국에 주둔하던 2000년 3월 당시 18살이던 엘자 쿤가예바라는 소녀를 고문하고 살해한 죄로 8년여를 복역한 인물이다. 그와 부하들은 새벽에 민가에 쳐들어가 쿤가예바를 야영지로 데려간 뒤 고문을 가한 끝에 살해했다. 쿤가예바의 가족들은 부다노프가 술에 취한 상태였다고 증언했다.
처벌 과정은 논란으로 점철됐다. 부다노프는 쿤가예바를 러시아군의 목숨을 노리는 저격수로 보고 신문하다가 감정을 억제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하급심은 정신적 문제를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쿤가예바의 몸에서는 성폭행 흔적이 발견됐지만 이 혐의는 처음부터 적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대법원이 2003년 무죄 판결을 뒤집는 바람에 부다노프는 징역 10년을 선고받았고, 2009년 1월 형기를 15개월 남겨놓고 가석방됐다. 나흘 뒤에는 그의 석방에 대해 상소하겠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하고 거리로 나선 인권변호사 스타니슬라프 마르켈로프와 체첸 문제를 다뤄온 <노바야가제타>의 기자 아나스타시야 바부로바가 괴한이 쏜 총에 함께 목숨을 잃었다.
그로부터 2년5개월여 뒤 부다노프가 살해된 것은 러시아와 체첸의 피의 악순환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준다. 러시아 쪽에서는 청부살인 흔적이 보이는 이번 사건의 배후로 체첸 반군뿐 아니라 체첸 정부도 의심하고 있다. 친러시아 정부를 이끄는 람잔 카디로프 체첸 대통령도 이 문제에는 “부다노프는 체첸인들의 적”이라며 미온적 처벌에 반발해 왔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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