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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황색지 앞세워 영국사회 흔들다가…

등록 2011-07-11 19:37수정 2011-07-12 10:23

루퍼트 머독. 한겨레 자료사진
루퍼트 머독. 한겨레 자료사진
‘궁지 몰린’ 언론재벌 머독
주간지 380만부·일간지 300만부 ‘문어발 언론’ 소유
선거개입 등 정치 쥐락펴락 하다 도청으로 입지 위축
1992년 영국 총선날 아침, 루퍼트 머독이 소유한 영국의 타블로이드 신문 <더 선>은 1면에 노동당 당수 닐 키녹의 얼굴을 전등에 구겨넣은 합성 그래픽과 함께 “만약 오늘 키녹이 이긴다면 영국을 떠나는 마지막 사람이 이 불을 꺼주시오”라고 썼다. 영국을 떠나고 싶지 않으면 키녹을 찍지 말라는 얘기나 다름없는 보도였다. <더 선>이 선거운동 과정에서도 끊임없이 노동당을 흠집낸 것은 물론이다.

선거는 노동당의 승리를 예상한 여론조사 결과와 달리 존 메이저의 보수당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고, 다음날 <더 선>은 1면에 “이긴 것은 ‘더 선’이다”라며 호기를 부렸다. 영국 <가디언>은 영국 정치인들이 머독에게 꼼짝 못하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다고 분석했다.

루퍼트 머독(80)의 이름에는 항상 ‘언론 제국’, ‘언론 황제’라는 별명이 따라붙는다. 머독이 소유한 영국 신문 <뉴스 오브 더 월드>가 불법 도청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진다며 지난 10일 자진 폐간했지만, 그가 전세계에 거느린 언론 관련 사업체만 700여개에 이른다.

루퍼트 머독이 소유한 영국 신문 현황
루퍼트 머독이 소유한 영국 신문 현황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머독은 22살이던 1953년 아버지가 사망한 뒤 물려받은 오스트레일리아 애들레이드시의 지역언론사 <더 뉴스>를 시작으로 <데일리 미러>, <선데이 타임스> 등 굵직굵직한 언론사를 인수하거나 창립했다. 특기는 스캔들과 루머로 가득 찬 선정적인 뉴스였다.

그는 이후 국외로 눈을 돌려 1969년 영국의 <뉴스 오브 더 월드>를 인수했고, <더 선>과 <더 타임스> 등도 잇따라 손에 넣었다. 미국에서도 1976년 타블로이드 <스타> 창간을 시작으로 1996년에는 <폭스텔레비전>을 출범시켰고, 2007년에는 <월스트리트 저널>도 인수했다.

그는 철저한 시장주의자로 알려져 있지만, 정치적 지향점은 사실 그때그때 다르다. 마거릿 대처 시절에는 영국 보수당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였지만 토니 블레어나 고든 브라운 총리 시절에는 노동당을 지지했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지지했다.

그가 가진 힘은 거침없는 여론 개입에서 나온다. <더 선>이나 <뉴스 오브 더 월드> 등 황색 타블로이드를 통해 싫어하는 정치인의 약점을 물고 늘어지거나 인신공격을 일삼았다. <더 타임스>나 <선데이 타임스> 등 이른바 ‘정론지’를 통해서는 정제된 여론전을 펼쳤다. 게다가 머독이 가진 신문의 발행 부수는 영국에서만 주간지 380만부, 일간지 300만부나 됐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치인들도 꼼짝을 못한다. 현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뉴스 오브 더 월드>의 전 편집장이었던 앤디 쿨슨을 공보책임자로 기용한 것 등도 이런 영향력을 등에 업고자 하는 노력의 하나였다.


하지만 그의 미디어 왕국도 <뉴스 오브 더 월드>의 불법 도청 사건으로 균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영국 장관이 <가디언>에 토로했듯이 “(불법 도청 파문을 계기로) 머독과의 관계가 한순간에 자산에서 부채로 바뀌어 버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디어 제국’ 건설의 정점에 있던 영국 위성 방송 <스카이> 인수 작업도 여론 독점에 대한 우려가 비등하면서 포기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형섭 기자 sub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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