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투자자도 거액 ‘고통 분담’
유럽 채무위기의 근원지인 그리스에 대한 추가 구제금융안이 타결됐다. 그동안 논란거리였던 민간투자자들의 고통분담도 포함됐다. 민간투자자들의 비자발적 고통분담은 디폴트(지급불능)라는 신용평가회사 등 시장의 평가도 감수하겠다는 의지이다.
유로존의 17개국 정상과 국제통화기금(IMF)은 21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긴급 정상회의에서 모두 1090억유로(약 165조원) 규모의 추가 구제금융을 그리스에 제공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이들은 신규 대출 1090억유로 이외에 민간투자자들이 약 370억유로 규모를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방안도 마련했다. 이 안에 따라 그리스 국채를 보유한 민간투자자들은 교환(스와프), 차환(롤오버), 환매(바이백) 등의 4가지 방식을 통해 그리스에 최대 30년까지 부채 상환을 위한 시간 여유를 주게 된다. 이에 더해 민간투자자들이 보유한 126억유로 상당의 국채가 추가로 바이백 프로그램에 의해 할인가로 재매입된다고 <파이낸셜 타임스>는 보도했다. 실제 이행될 경우 신규 대출 등을 합해 모두 1586억유로 규모가 지원되는 셈이다.
대형 은행들의 모임인 국제금융기구(IIF)는 그리스에 대한 이번 부채 조정은 그리스에 투자한 민간투자자들의 “90% 이상의 참가”를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이 기구는 부채 조정으로 인한 민간투자자들의 손실은 보유한 채권 시장가의 21%라고 덧붙였다.
외신들은 민간투자자들이 이런 손실 부담을 안게 됨에 따라 신용평가회사 등이 그리스를 디폴트로 선언할 것이라 예상된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그러나 이 조처가 그리스 채권이 아닌 그리스에 취해지는 것이며, 민간투자자들이 4가지 선택사항을 통해 구제금융에 참가하면 그리스의 신용도가 ‘지급불능’ 등급에서는 가장 양호한 범위로 조정될 것이라며 “시장의 충격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파이낸셜 타임스>는 예상했다.
실제로 3대 신용평가회사 중 하나인 피치는 22일 그리스 국가신용등급을 일시적으로 ‘제한적 디폴트’(RD) 등급으로 낮춘 뒤 투기등급으로 곧 상향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피치는 또 유로존 정상회의 합의 결과는 “중요한 긍정적인 조처”라고 높이 평가했다. 피치는 구제금융 프로그램에 따라 새로운 국채가 발행돼 디폴트 이벤트가 치유되면 국가신용등급과 교환된 국채에 새로운 등급을 부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로존 정상들은 민간투자자들의 손실이 포함된 이번 조처가 그리스에만 한정된 ‘예외적이고 특별한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정상들은 또 그리스 위기의 전염을 막기 위해 모두 4400억달러 상당의 유로존 구제금융 펀드인 유럽재정안정기구(EFSF)의 구제금융 조건도 완화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그리스뿐 아니라 아일랜드, 포르투갈 등 이미 구제금융을 받은 나라들은 모두 약 3.5%의 금리로 지원을 받을 수 있으며, 최대 30년까지 상환을 늦출 수 있게 됐다. 또 유럽재정안정기구가 예방적 조처로서 구제금융을 받지 않는 나라에도 금융지원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겨냥한 조처이다. 이런 유로존 구제금융 펀드에 대해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국제통화기금의 유럽판인 유럽통화기금(EMF) 창설을 향한 기념비적 조처”라고 평가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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