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폭동 닷새째
9일 온라인쇼핑몰인 영국 ‘아마존’에서 알루미늄 배트는 평소보다 65배나 많이 팔렸다. 경찰봉은 판매 순위 5937위에서 136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시민들이 폭도에 맞서 무장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날 런던경찰청 경무관 스티븐 캐버너는 “폭도를 물리친 것은 경찰의 고무탄환도, 물대포도 아닌, 시민들이다”라고 말했다. 폭동이 9일 브로미치, 울버햄프턴, 노팅엄 등 중부 잉글랜드 도시까지 번지며 방화와 폭력이 잇따르는 가운데, 무능한 경찰과 당국을 믿지 못하는 시민들이 자체적으로 ‘자경단’을 조직해 폭도와 맞서고 있다.
가장 먼저 나선 것은 런던 북부의 터키계 주민들이었다. 미용사, 가게 점원, 정육점 주인 등 수십명은 야구 방망이로 무장한 채 8일 저녁부터 해링게이 지역을 지키기 시작했다. 한 주민은 <가디언>에 “가게를 이만큼 키우는 데 20년이 걸렸는데 폭도들에게 모든 것을 빼앗길 수는 없다”고 말했다. 다른 주민 일마즈 카라고즈는 “케밥을 자르는 칼을 들고 달려들자 폭도들이 도망가 버렸다. 다시는 올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라며 웃었다. 이런 움직임은 급격하게 퍼져 이스트햄 지역에서는 수백명의 아시아계 주민들이 뭉쳐 수십명의 폭도를 쫓아냈고, 사우스올 지역에서는 시크계 주민 수십명이 사원을 지키기 위해 모여들었다.
이들은 폭도뿐 아니라 무능력한 경찰과 당국에 비난을 쏟아붓고 있다. 한 점원은 “경찰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아 우리가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인디펜던트>에 말했다. 경찰은 8일 저녁 런던 시내에 6000여명만을 배치하며 안일하게 대처했고, 폭동이 크게 격화된 뒤인 10일에야 1만6000명이나 배치해 고무탄환을 쏘고 최루탄이나 물대포를 사용하겠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폭동은 런던을 넘어 전국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스티븐 캐버너 경무관은 기자회견에서 경찰이 안일하게 대처했다는 비판에 “영국 경찰은 20여년 전과는 크게 바뀌었다”며 “인명 보호를 위해 신중하게 대처할 수밖에 없었다”고 항변했다. 영국 경찰은 1970~80년대 시위대를 과격하게 진압하기로 악명이 높았다.
폭동으로 인한 재산 피해는 최대 1억파운드(1755억원)로 예상된다. 영국은 1886년에 제정된 ‘폭동법’에 발생한 재산피해는 지방경찰이 보상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결국 런던 시민의 세금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한편, 지난 4일 토트넘에서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진 마크 더건이 사살될 당시 총을 쏘지 않았다는 경찰민원처리위원회의 조사 결과가 9일 발표돼 폭동이 다시 격화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형섭 기자 sub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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