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국제 유럽

‘LA폭동’과 겹쳐 보이는 영국의 폭동

등록 2011-08-12 16:41

영국 토트넘에서 경찰의 과잉진압에 항의해서 시작된 폭동이 영국 전역으로 번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폭동이 처음 일어난 곳은 영국에서도 손꼽히는 빈민가였고, 신자유주의의 확산 이후 심각해진 빈부격차 때문에 다른 지역들보다 더 많은 불만이 알게 모르게 집중되어 있었으리라는 짐작은 듭니다만, 지금은 이 폭동이 영국 각지로 번지면서 영국은 느닷없는 치안 공황 사태를 맞게 됐습니다.  

‘레이거노믹스’라는 검증되지 않은 경제 정책이 지금 미국의 경제위기를 불러온 것처럼, ‘대처리즘’으로 불리는 ‘복지 체제의 해체’는 영국의 빈부격차를 더욱 심화시켰습니다. 지금까지 영국 사회에 잠재된 불안을 키워온 것도 ‘대처리즘’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80년부터 쌓인 사회에 대한 불만이 1992년 ‘로드니 킹 사건’을 계기로 ‘LA폭동’이라는 형태로 표출됐습니다. 이때 미국의 지배층은 이 폭동의 원인을 사회적 불안이 아닌 ‘인종간 갈등’으로 몰아붙였고, 이를 또 ‘두순자 사건’과 연관시켜 폭동 자체를 ‘한인 대 흑인’의 구도로 몰고가려 한 적이 있습니다.

가게에서 물건을 훔친 것으로 의심받던 흑인 소녀 라타샤 할린스와의 언쟁 끝에 실수로 총기를 발사, 숨지게 한 ‘두순자 사건’이 흑인들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건드려 한인타운이 큰 피해를 입는 원인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LA폭동 당시 가장 큰 활약(?)을 했던 것은 중남미계 출신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백인 지배층이 한인들의 대량 이민을 허용한 이유가 여기에서 드러납니다. 백인과 타인종과의 충돌시 ‘완충장치’가 필요했던 백인 지배층에게 ‘일만 열심히 하는 한인’들은 딱 좋은 바람막이였던 것입니다.

하워드 진이 <미국민중사>를 통해 지적했듯, 미국 건국 초기에 가난한 아일랜드 출신 이민들과 흑인 노예들이 연합하지 못하도록 인종적인 이슈를 사회지배에 사용했던 백인 지배층은 LA폭동 때도 그들의 노하우를 십분 활용합니다.

문제는 당시 미국사회에 형성된 ‘유산계급에 대한 무산계급의 적대적 분위기’를 온몸으로 받아낼 ‘방패’ 역할을 맡을만한 한국인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LA 한인들이 자신의 재산과 삶터를 지키기 위해 온몸을 내던져 폭동에 맞서는 동안 경찰은 LA의 부촌으로 넘어가는 길목만을 딱 차단했습니다. 사건의 결과는 ‘한-흑 갈등’으로 포장됐습니다. 그런데 지금 영국의 경우엔 그런 ‘방패’도 없습니다. 이 폭동이 더욱 빠른 속도로 확산되는 원인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미국과 영국은 주도적으로 신자유주의의 확산에 앞장서 왔고, 이른바 ‘효율’을 핑계로 그때까지 서구의 기본정책이었던 사회복지를 폐기하고 친기업 성향으로 돌아섭니다. 노조분쇄 및 파괴, 각종 복지혜택의 삭감 및 철폐, 그리고 생산설비의 해외이전 허용, 심지어는 대기업의 신용카드 발행까지 허용(즉, 대부업을 가능하게)하면서 이른바 ‘유동성 확보’에 힘을 기울인 결과 사회복지는 계속 형편없이 망가졌고, 사회복지와 피고용자의 임금을 바탕으로 돌아갔던 소비경제 자체가 기울었습니다. 그러나 기업은 ‘신용카드 이자 받아먹는 재미’에 투자를 등한히 하고, 더욱 저렴한 노동력을 고용하기 위해 생산 시설을 외국으로 옮기는데 열을 올렸습니다. 기업들이 그들의 ‘주요 고객’이자 ‘잠재적 고객’인 자기 직원들과 자국민들을 등한시한 결과가 현재의 ‘중산층의 붕괴’와 ‘극단적인 양극화’입니다.

지금 우리는 불안요소들이 쌓이면 사회가 어떤 모습이 되는지 대표적인 제1세계 국가인 영국을 통해 보고 있습니다. 어쩌면 미국에서도 이런 소요가 다시 생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처럼 사회적 불평등과 불안요소들이 쌓이고 있는 경우라면, 그 어느 나라라도 이런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쓸데없는 사회적 불안요소’들을 키우는 것보다는 복지를 확대해 국민의 불만을 해소해주는 것이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훨씬 이로울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한겨레 블로그 내가 만드는 미디어 세상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국제 많이 보는 기사

트럼프 ‘호주 관세 예외’에 일본 “우리 철강·알루미늄도” 기대감 1.

트럼프 ‘호주 관세 예외’에 일본 “우리 철강·알루미늄도” 기대감

‘누가 뭐래도 내가 실세’...트럼프 앉혀두고 오벌오피스에서 브리핑 2.

‘누가 뭐래도 내가 실세’...트럼프 앉혀두고 오벌오피스에서 브리핑

트럼프, 요르단 국왕에 대놓고 “미국이 가자지구 가지겠다” 3.

트럼프, 요르단 국왕에 대놓고 “미국이 가자지구 가지겠다”

D-30, 트럼프 철강 관세 실행 …BBC “한국도 영향 불가피” 4.

D-30, 트럼프 철강 관세 실행 …BBC “한국도 영향 불가피”

“이혼해도 가족”…데미 무어, 치매 브루스 윌리스 매주 찾아가 5.

“이혼해도 가족”…데미 무어, 치매 브루스 윌리스 매주 찾아가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