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크·드빌팽-아프리카 중재자 역할 부르지
“옛식민지 6국서 수천만달러 받아 전달” 폭로
“사르코지 정권도 거래했을 것” 정계 폭풍전야
“옛식민지 6국서 수천만달러 받아 전달” 폭로
“사르코지 정권도 거래했을 것” 정계 폭풍전야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과 도미니크 드빌팽 전 총리가 아프리카 지도자들한테서 2천만달러의 불법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이 프랑스 정가를 강타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또 프랑스 정부와 옛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정부 사이의 검은 거래의 실상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영국 <비비시>(BBC) 방송은 13일 “거물 정치인들의 수천만달러 불법자금 수수 의혹을 놓고 프랑스 여론이 (이들에 대한) 반감과 (이번 폭로에 대한) 불신으로 쪼개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런 의혹은 오랫동안 엘리제궁(프랑스 대통령 집무실)과 아프리카 정부들 사이에서 중재자 노릇을 해온 법률가 로베르 부르지(66)의 폭로로 불거졌다. 그는 11일치 <주르날 뒤디망슈>와의 인터뷰에서 “2002년 대통령 선거 때 아프리카의 6개국 지도자들로부터 1천만달러의 현금을 받아 내가 시라크에게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1995년부터 2005년까지 옛 프랑스 식민지였던 세네갈, 부르키나파소, 코트디부아르, 콩고, 가봉과 옛 스페인 식민지였던 적도기니 정부로부터 2천만달러의 현금이 엘리제궁으로 흘러들어갔다고 폭로했다.
파리 시장 재직 시절 공공자금을 자신의 정당에 몰래 지원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시라크로선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보수파 정계에서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과 숙적 관계였던 드빌팽은 이번 폭로를 내년 4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려는 자신을 낙마시키려는 시도로 보고 있다. 시라크와 드빌팽은 의혹을 강력히 부인하며 명예훼손 소송을 하겠다고 밝혔다. 또 불법자금을 건넨 것으로 지목된 세네갈과 콩고, 부르키나파소 등도 부르지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시라크와 드빌팽을 위해 일하다가 2007년 사르코지 현 대통령 취임 뒤 아프리카 비공식 자문관으로 활동해온 부르지는 이번 폭로로 “프랑스가 깨끗해지길 원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르몽드>는 “사르코지를 위해 4년 동안 비공식적으로 일해온 부르지가 최근 사르코지의 눈 밖에 났다”며 폭로 의도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번 사건이 사실로 확인되면 프랑스 정치계는 일대 폭풍을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시라크의 과거 측근은 사르코지 정권에서도 이런 거래가 있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했으며, 이번 사건에 대해 경찰 수사와 의회 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폭로는 프랑스의 드골주의 정당과 옛 아프리카 식민지 간에 30년 이상 계속돼온 인적, 정치적, 재정적 관계, 이른바 ‘라 프랑사프리크’의 어두운 측면을 부각시켰다. 그동안 아프리카 지도자들이 프랑스에 광물자원 개발과 무기 계약 등 이익을 보장하고, 프랑스는 그 대가로 군대를 이용해 그들의 권력을 유지시켜 준다는 비판이 계속돼왔다.
이번 폭로는 아프리카 지도자들이 프랑스 대통령에게 이권뿐 아니라, 현금까지 가져다줬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권을 보장받은 프랑스 기업들이 아프리카 정부에 뇌물을 주고, 아프리카 지도자들은 프랑스 정당에 자금을 건네는 프랑스 정부-기업-아프리카 정부 사이 ‘검은 사슬’의 한 고리가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김규원 기자 che@hani.co.kr
김규원 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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