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의 수도 격인 벨기에 브뤼셀에서 15일(현지시각) 열릴 대규모 시위를 앞두고 스페인 등 각국에서 모여든 ‘브뤼셀 아고라’ 참여자들이 10일 저녁 거리에서 북을 치고 다니며 시민들에게 동참을 호소하고 있다. 브뤼셀/이본영 기자
르포/ 15일 대규모 시위 앞둔 브뤼셀을 가다
각국서 온 선발대 300여명
호게스쿨대 강당에서 회의
3개언어로 타이핑해 보여줘
각국서 온 선발대 300여명
호게스쿨대 강당에서 회의
3개언어로 타이핑해 보여줘
“정치인하고는 얘기하기 싫다. 난 벨기에인 등 유럽인들과 대화하고 싶어 왔을 뿐이다.”(아드리안) “시장한테도 우리의 운동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지 않겠냐.”(맥스)
10일 밤(현지시각) 벨기에 수도 브뤼셀의 호게스쿨대(응용과학대) 강당에서는 이곳을 관할하는 코겔베르그(자치구) 시장의 ‘분노한 사람들’ 대표단 면담 요청을 두고 찬반 주장이 맞섰다. 대표단이 따로 없는 이들에게 대표단 면담 요청이 들어왔으니 대표를 선출해야 할지부터 고민이었다.
오는 15일 유럽연합의 수도 격인 브뤼셀에서의 대규모 시위를 앞두고 도착한 각국 시민들은 이렇게 모두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하는 “민중의회” 또는 “총회”로 불리는 회의를 통해 행동 방향을 논의했다. 토론자들은 대부분이 서로 초면이지만 금세 말을 섞고 상대의 의견을 경청했다. 대의민주주의는 정치 엘리트들과 소수 부자들의 결탁으로 타락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브뤼셀 아고라’로 이름을 붙인 이곳에서 직접민주주의를 보여주겠다고 나선 것이다. 강당에 모인 300여명 중에는 20~30대가 다수였지만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1500㎞ 이상 떨어진 스페인 등지에서 도보로 온 사람들도 있어 전반적으로 행색은 초라했으나 ‘유럽 민중들의 의회’에 참여하는 표정들은 각별했다.
하지만 선발대가 도착한 지 이틀밖에 안 된 상태에서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현안을 토의하고 결론을 낸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언어 장벽이 우선 문제였다. 현장에서 구성된 운영진은 발언을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로 타이핑한 3개의 컴퓨터 화면을 연단에 비추는 묘책을 동원하기도 했다. 또 “찬성”, “반대”, “조용히” 등의 의사 표현을 하는 표준 손동작이 만들어져 회의 진행에 요긴하게 쓰였다.
밤늦게까지 이어진 토론은 직접민주주의의 ‘비용’도 보여줬다. 의견이 갈린다면 투표로 결정할지부터가 논란거리였다. 사회자는 “전체적 의사결정 방식에 대해서는 각각의 활동조에서 우선 논의를 하자”며 이에 대한 결론을 미뤘다.
이렇게 진통이 적잖지만, 지난 8일 스페인과 프랑스를 도보로 횡단한 이들이 도착한 이래 각국 시민들의 합류가 이어지며 ‘브뤼셀 아고라’는 점점 활력을 띠어가고 있다. 참여자들은 각각 통신, 의료, 배식 등의 임무를 맡은 18개 활동조 중 하나에 소속된다. 애초 근처 공원에 캠프를 차렸다가 시 당국의 권고를 받아들여 입주한 건물에서 참가자들은 낮에는 경제 정의나 환경 등을 주제로 토론회도 열고 있다. 한 운영진은 “영국과 네덜란드에서도 사람들이 계속 오고, 심지어 미국에서 온 사람도 있다”며 “13일에는 네덜란드와 독일로부터 도보 행렬이 도착한다”고 말했다.
새로 도착하는 이들을 안내하던 스페인 변호사 델레라 알베로는 “우리는 경제위기를 초래한 은행들이나 대기업들이 책임을 져야 하고, 민주주의의 작동 방식이 잘못됐다는 점을 세계에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브뤼셀/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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