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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영국 의회와 정부의 거리는?

등록 2011-11-08 15:39수정 2011-11-08 15:40

다우닝 거리 10번지 영국 수상 관저 골목 입구. 김규원 기자
다우닝 거리 10번지 영국 수상 관저 골목 입구. 김규원 기자
영국 정치나 정부와 관련한 이야기가 나올 때 자주 나오는 표현 가운데 하나는 ‘10 다우닝 스트리트’(넘버 10이라고도 함)와 ‘화이트홀’, ‘웨스트민스터’이다. 10 다우닝 스트리트는 수상 관저의 주소인데, 수상, 또는 수상실을 뜻하는 말로 사용된다. 한국으로 치면, 청와대가 있는 ‘세종로1번지’라고 할 수 있다.

‘화이트홀’은 트라팔가 스퀘어에서 영국 의회에 이르는 길로 영국 중앙정부가 집중된 곳이어서 영국 정부를 뜻하는 말로도 사용되는데, 한국의 세종로에 해당한다. 화이트홀 가운데 다우닝 스트리트 남쪽은 팔러먼트 스트리트라고 한다. 또 웨스트민스터는 우리의 종로구 정도에 해당하는 지역인데, 보통 영국 의회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한국에서는 ‘여의도’에 해당하는 말이며, 정식 명칭은 웨스트민스터 궁전(Palace of Westminster)인데, 하우시스 오브 팔러먼트(Houses of Parliament)라고도 한다.

화이트홀과 10 다우닝 스트리트, 웨스트민스터를 가보면 영국이라는 나라가 원체 한국과는 다른 점이 많지만, 의회·정부가 자리잡은 모습도 참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중앙정부의 부처들이 한 도시의 한 거리에 모두 몰려 있다는 점이다. 화이트홀 거리에만 중앙정부의 건물이 모두 14개 있는데, 재무부, 외무·연방부, 수상실, 내각부, 스코틀랜드부, 기마경비대, 옛 해군부, 환경·식품·시골부, 옛 전쟁부, 국방부, 웨일스부, 건강부, 직업·연금부, 의회 법률 초안부(Office of the Parliamentary Counsel) 등이다. 나아가 영국 중앙정부는 정무 부처가 모두 24개이고, 비정무 부처가 26개인데, 대부분이 화이트홀과 화이트홀 주변에 몰려 있다고 한다. 화이트홀 거리 자체가 영국의 정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트라팔가 광장에서 본 화이트홀 거리. 김규원 기자
트라팔가 광장에서 본 화이트홀 거리. 김규원 기자

이렇게 정부 부처가 모여 있으면 당연히 부처간에 업무를 협의하는 데 편리하고 국가의 중요한 사안이 있을 때 순식간에 관계 장관들이 넘버 10에 모여서 회의를 열 수 있을 것 같다. 아마도 중앙정부의 공무원 대부분이 다른 부처와 업무를 협의하거나 회의할 일이 있을 때 걸어가거나 버스를 타고 10~20분 안에 다른 부처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화이트홀 거리의 전체 길이가 1㎞인데, 넘버 10을 중심으로 반경 500m 또는 멀어도 1㎞ 안에 거의 모든 중앙정부 부처들이 모여 있다고 한다. 이렇게 중앙정부 부처들이 한 지역에 집중적으로 배치돼 있을 때 업무 협조와 협의의 효율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 같다.

반면, 한국에서는 현재 중앙정부의 부처들이 서울과 과천, 대전 등 3곳에 흩어져 있는데, 행정중심 도시인 세종시를 건설하면 오히려 서울, 세종시, 대전, 과천 등 4곳으로 나뉘어지게 된다. 세종시에 가장 부처가 많아서 9부2처2청, 서울에 5개 부, 과천에 1부1청, 대전에 8개 청이 자리잡게 된다. 사실 이렇게 중앙부처가 흩어져 있는 것은 정부 운영의 효율 차원에서 보면, 불합리하기 짝이 없다. 세종시 건설과 정부 산하기관 이전을 통한 지역 균형발전에 찬성하는 내 입장에서 볼 때도 중앙정부가 이렇게 뿔뿔이 흩어지게 된 것은 정말 아쉬운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중앙정부를 세종시로 이전하지 못하도록 온갖 방해를 한 뒤에 정부부처가 나뉘게 되자, 이것이 마치 노무현 정부의 잘못인 것처럼 호도하는 수도권 중심주의자들에게 깊은 유감을 표시하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장소에 중앙정부 기능을 집중시키는 것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영국 의회에서 바라본 재무부 건물의 모습. 김규원 기자
영국 의회에서 바라본 재무부 건물의 모습. 김규원 기자

둘째로는 중앙정부뿐 아니라, 의회와 중앙정부가 한 동네에 모여 있다는 것도 영국의 정치에서 부러운 대목이었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영국의 중앙정부 부처 대부분은 화이트홀 일대에 모여 있는데, 화이트홀의 남쪽 끝에 바로 영국의 의회가 있다. 화이트홀에 자리잡은 14개 영국 정부부처 가운데 재무부는 영국 의회와의 거리가 50m 정도로 가장 가깝고, 가장 먼 환경·식품·시골부와의 거리도 1㎞ 정도다. 따라서 각 부의 장관들을 비롯한 공무원들이 대부분 의회까지 걸어가서 일을 볼 수 있는 거리다. 국정감사 때 세종로와 과천과 대전에서 자료를 바리바리 싸가지고 여의도로 몰려드는 한국과는 큰 차이가 있다. 이런 거리면 의회와 정부가 만나서 서로 업무를 협의하고 함께 일하는 데 매우 편리할 것이다. 더욱이 영국은 의회에서 행정부가 나오는 의원 내각제가 아닌가.


반면, 한국에서는 3개의 주요 정부청사 단지 가운데 가장 가까운 서울의 정부중앙청사에서 국회까지의 거리가 8㎞이며, 공공교통으로 최소 30분 이상 걸린다. 국회에서 정부과천청사와의 거리는 22㎞이며, 공공교통으로 최소 50분이 걸린다. 국회에서 대전정부청사까지의 거리는 165㎞이며, 공공교통으로 최소 2시간20분이 걸린다. 국회와 현재 건설중인 세종시까지의 거리는 154㎞이며, 공공교통으로 최소 3시간이 걸린다. 세종시는 대전보다 거리는 더 가깝지만 교통시설의 미비로 인해 시간이 더 걸린다. 이렇게 국회와 정부청사가 떨어져 있으면 서로 얼굴을 보고 업무를 협의하는 일은 같은 서울 안에서도 쉽지 않으며, 과천이나 대전, 세종시는 말할 것도 없다. 특히 과천이나 대전, 세종시에서의 공무원이 국회에 볼 일이 있으면 한나절이나 하루를 모두 투자해야 한다. 그래서 국정 감사 때 정부의 업무가 사실상 마비되는 일을 피하기 어려운 것이다.

영국 재무부 쪽에서 바라본 의회. 김규원 기자
영국 재무부 쪽에서 바라본 의회. 김규원 기자

단기적으로는 서울과 세종시, 대전, 과천에 중앙정부 부처를 나눠놓고 국회는 서울에 둬서 정부 업무의 비효율성이 커지는 일을 막을 길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는 서울이 아닌 한 곳에 중앙정부 전체와 국회까지를 옮기는 계획을 세워야 할 것 같다. 입법부와 행정부 사이의 업무 협의는 매우 중요하고, 긴밀하게 이뤄져야 하며, 따라서 그 둘 사이의 거리는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보수세력은 지역 균형발전에 대한 맹목적인 반대를 거둬들여야 하며, 진보세력은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 새로운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중앙정부의 흩어짐, 중앙정부와 국회의 떨어짐은 업무의 비효율을 낳게 돼 있으며, 이것은 다른 방법으로는 근본적 해결이 불가능하다.

셋째로 영국의 중앙정부 건물들은 건물을 둘러싼 담장을 치거나 건물 앞마당에 주차장을 설치하지 않아 접근성이 좋다. 화이트홀 거리나 화이트홀에서 가지친 골목으로 걸어가보면 영국의 중앙정부 건물들은 모두 거리에 노출돼 있고, 시민들은 쉽게 구경하거나 접근할 수 있다. 화이트홀에서 가장 번듯한 건물들이라고 할 재무부와 외무·연방부 사이 킹 찰스 스트리트는 어귀에 경비원이 있기는 하지만, 일반 시민들도 누구나 쉽게 지날 수 있다. 두 건물 사이에는 윈스턴 처칠의 2차 세계대전 때 전쟁을 지휘한 지하벙커인 ‘워 캐비닛 룸’도 있다. 이 건물들은 창문이 높아서 거리에서 사무실을 직접 들여다 볼 수는 없지만, 사람과 차들이 드나드는 것은 쉽게 볼 수 있다. 또 영국 중앙정부 건물들의 조화롭고 장중한 아름다움도 느껴볼 수 있다.

영국 재무부와 외무부 사이 킹 찰스 거리. 김규원 기자
영국 재무부와 외무부 사이 킹 찰스 거리. 김규원 기자

다른 정부 건물들도 모두 화이트홀이나 화이트홀에서 가지친 리치먼드 테라스, 호스 가즈 애버뉴, 화이트홀 플레이스, 그레이트 스코틀랜드 야드 등 골목을 통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2005년 런던 테러 뒤 여러 가지 보안 장비들이 곳곳에 설치됐다고는 하지만, 거리를 따라 정부가 들어선 그 모습과 편리한 접근성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화이트홀은 딱딱한 정부 거리이지만, 거리를 따라 들어선 잘 지어진 건물들 덕으로 거리 자체가 품격이 있고 볼거리가 된다. 그래서 사시사철 영국 전역과 다른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끊어지지 않는다. 물론 이 정부 건물들에 직접 들어가기 위해서는 적절한 자격이나 허가가 필요할 것이다.

물론 화이트홀의 건물 가운데서도 수상 관저인 10 다우닝 스트리트(넘버 10)처럼 담장을 치고 문을 단 건물도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수상실도 건물 둘레에 담장을 친 것은 아니고 이 건물로 접근하는 양쪽 거리 입구에 쇠살 담장과 쇠살 문을 설치한 것이다. 이 건물은 수상실로 쓰인 1735년 이후 250년 동안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었는데, 아일랜드공화국군(IRA)과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경비가 강화됐다. 1989년 마거릿 새처 수상 때 처음 양쪽 거리 입구에 문을 설치했고, 1991년 존 메이저 수상 때 IRA가 실제로 수상실을 폭탄으로 공격한 뒤 엄청난 보안 경찰력과 장비가 배치됐다. 또 2005년 런던에 대한 테러 뒤 경비는 더욱 강화됐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아쉽게도 일반 시민들은 수상 관저를 쉽게 구경할 수 없고, 쇠살 문과 쇠살 담장 뒤에 중무장한 경찰들의 모습만 볼 수 있다.

세종로의 정부중앙청사. 김규원 기자
세종로의 정부중앙청사. 김규원 기자

한국의 정부 건물들을 한번 생각해보자. 서울의 정부중앙청사는 대체로 세종로의 본관, 별관이며, 그 건너편에는 문화체육관광부 건물이 있다. 이 가운데 정부중앙청사 본관의 경우 담장이 둘러쳐져 있고, 앞마당에는 너른 주차장이 있다. 별관의 경우도 담장으로 둘러쳐져 있고, 앞마당 자리에는 지하 주차장이 들어서 있다. 지상의 공원은 거의 허울뿐이다. 문화부의 경우도 앞마당에 주차장을 두고 담장이 둘러쳐져 있다. 앞마당에 주차장을 두고 건물을 뒤쪽에 짓고 담장을 둘러치는 이런 건축 양식은 그 건물이 들어선 거리의 활력과 아름다움을 죽이는 큰 원인이다. 세종로는 정부청사가 들어서지 않은 세종문화회관 남쪽과 건너편 한국통신 남쪽에만 거리의 활력이 있다.

그런데 정부중앙청사는 3개의 정부청사 단지 가운데 그나마 가장 나은 것이다. 과천이 가장 좋지 않다. 과천은 서울에서 20㎞나 떨어져 있어 정부중앙청사나 국회와의 업무 협의 효율이 매우 떨어지며, 과천에서도 변두리 관악산 기슭에 있어 접근성 문제가 심각하다. 공공교통으로 가면 정부과천청사 지하철역에서 나와 빈 운동장을 가로질러 250m를 걸어가야 과천청사 정문이 나오고 거기서 또 100~500m씩을 걸어가야 6개 정부 건물에 닿을 수 있다. 과천청사 역시 모두 담장으로 둘러쳐져 있어서 접근성을 낮추고 있다. 차량을 갖고 다니지 않으면 그 불편함이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접근성이 좋지 않은 정부과천청사. 김규원 기자
접근성이 좋지 않은 정부과천청사. 김규원 기자

정부대전청사는 서울에서 160㎞나 떨어졌다는 것이 약점이고, 대전의 신도심에 있다는 것은 강점이다. 도심 한복판이기 때문에 주변에 상업·업무 시설이나 주택지가 잘 발달해 있다. 그러나 대전청사는 영국 귀족의 저택처럼 거대한 주차장과 공원에 둘러싸여 있다. 이로 인해 정문으로 들어가서 250~350m를 걸어 들어가야 건물이 나온다. 공무원과 건축가가 처음에 이 청사를 설계할 때 시민들의 편리를 고려했다면 당연히 큰 길을 따라 건물을 지었을 것이고, 남는 터는 미술관이나 박물관, 도서관, 공연장, 등 공공시설을 짓는 데 활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대전청사는 대전의 둔산 신도심에서 가장 좋은 입지를 차지하고 대부분의 땅을 거대한 주차장과 공원으로 만들어 주변 지역과 단절해 버렸다.

사실 대전청사의 거대한 터를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은 세종시 건설 대신 이 터에 중앙청사들을 옮겨 대전을 행정수도나 행정도시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면 번듯한 정부청사 콤플렉스, 정부청사 거리를 조성하는 것도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전혀 가능성이 없으며, 오히려 정부대전청사조차도 장기적으로 세종시로 옮기는 것이 중앙정부의 업무 효율 차원에서는 더 나을 성 싶다. 대신 이 터를 대전시에 넘긴다면 앞에서 말한 공공시설들을 조성함으로써 대전 시민들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이다.

넓은 땅을 놀리는 정부대전청사. 김규원 기자
넓은 땅을 놀리는 정부대전청사. 김규원 기자

역사를 되짚어 보면 한국의 경우도 조선 때까지는 현재의 세종로(육조 앞, 육조 거리)에 의정부를 비롯한 6개 부처(이·호·예·병·형·공)가 모두 자리잡고 있었다. 현재 영국의 화이트홀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해방과 정부 수립 뒤에도 중앙정부는 중앙청(옛 조선총독부 건물)과 정부중앙청사에 몰려 있었고, 국회는 걸어서 5~10분 거리인 태평로의 현 서울시 의회 건물에 들어 있었다. 심지어 사법부인 대법원과 서울지법도 바로 옆 정동에 있었으며, 검찰청도 그 옆에 있었다. 그런데 역대 정부의 어정쩡한 정부 분산 정책으로 인해 중앙정부는 과천과 대전으로 흩어졌고, 국회는 여의도, 사법부·검찰은 강남으로 옮겨갔다. 이제는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의 대책없는 분산이 아니라, 질서있는 분산과 중앙정부 기관의 집중을 고민해야 할 시기가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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