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50만달러 매입뒤
가치 급등 7만9000달러 수익
‘통화정책 누설’ 의혹 받아와
가치 급등 7만9000달러 수익
‘통화정책 누설’ 의혹 받아와
외환 정책 정보를 이용한 환투기 의혹을 받아온 스위스 중앙은행 총재가 자신이 무고하다는 “결정적 증거”를 제시할 수 없다는 이유로 사임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가 보도했다. 그리고 사태는 그가 부정행위를 했다는 결정적 증거가 드러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필리프 힐데브란트 스위스 국립은행 총재는 9일 “내가 모르는 상태에서 아내가 외환 거래를 했다는 결정적 증거를 제시하는 게 불가능하다”며 사임 압력에 무릎을 꿇었다. 힐데브란트는 아내가 지난해 공표 직전의 외환 정책을 이용해 환차익을 올렸다는 의혹에 시달려왔다. 기업의 미공개 정보로 주식 시세차익을 올리는 행위는 널리 알려진 것이지만, 한 나라의 중앙은행 총재가 자신이 개입하는 통화정책을 이용해 사익을 취한다는 것은 훨씬 충격적인 일이다.
사건은 지난해 8월15일 그의 아내 카시아가 40만스위스프랑을 팔아 50만4000달러(약 5억8000만원)를 사면서 시작됐다. 유로존 위기 속에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던 프랑이 달러 및 유로 대비 최고치 기록을 경신하던 무렵이었다. 투자는 적중했다. 이틀 뒤 스위스 국립은행이 돈을 풀어 프랑 가치를 끌어내리겠다고 발표하자 달러가 뛰기 시작했다. 스위스 국립은행은 그해 9월6일에는 1프랑을 1.20유로 이하로는 만들지 않겠다며 다시 강력한 시장 개입 의지를 보였다. 달러는 10월 초에는 8월 중순에 견줘 프랑에 대해 17%나 올랐다. 힐데브란트의 아내는 이때 달러를 되팔아 재미를 봤다.
최근 이 수상한 거래가 알려지면서 힐데브란트는 파렴치한 중앙은행장이라는 욕을 먹어왔다. 힐데브란트는 오비이락이라며 펄쩍 뛰었다. 그는 “내 아내는 개성이 강한 사람”이라며, 미국 헤지펀드에서 함께 일하다 결혼한 아내가 스스로 내린 투자 결정이지 베갯머리송사의 결과는 아니라고 강변했다. 당시는 많은 사람이 프랑이 지나치게 고평가됐다고 하던 때라 그런 주장은 조금은 설득력이 있게 들렸다. 힐데브란트는 또 아내가 차익 7만9000달러를 자선단체에 기부했다며 여론 달래기에도 나섰다.
하지만 10일 스위스 국립은행이 공개한 이메일은 변명의 여지를 거의 없애버렸다. 공개된 이메일들을 보면, 힐데브란트의 아내는 달러를 산 지난해 8월15일 거래 은행 직원에게 “우리는 달러 비중을 50%까지 올리려고 한다”며 거래를 주문했다. 이 소식을 들은 힐데브란트는 이튿날 아내와 이 직원에게 보낸 이메일에 “달러 거래 얘기에 놀랐다”며 “우리가 어제 달러 매입을 의논하지는 않았는데 아내가 (혼자) 거래 주문을 한 것 같다”고 썼다. 여기까지만 보면 힐데브란트는 억울한 것 같다. 그러나 이 은행 직원은 답장에서 “(당신이) 어제 ‘카시아가 달러 비중을 늘리기를 원하면 그렇게 하자’고 얘기하지 않았느냐”며 ‘왜 딴소리를 하냐’는 반응을 보였다.
결국 힐데브란트는 이 이메일에 결정타를 맞고 곧바로 옷을 벗었다. 국가대표 수영 선수 출신인 힐데브란트는 2003년에 40살의 나이로 역대 최연소 스위스 국립은행 이사에 오르면서 금융 강국 스위스의 대표적 경제 지도자로 떠올랐던 인물이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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