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이 금융위기 책임을 물어 국영 은행장의 기사 작위를 박탈했다.
프레드 굿윈 전 스코틀랜드왕립은행 총재가 파산 직전까지 간 은행 경영에 대한 책임으로 엘리자베스 여왕에 의해 기사 작위를 박탈당했다고 영국 <비비시>(BBC)가 31일(현지시각) 보도했다. 굿윈은 지난 2004년 노동당 정부 시절 기사 작위를 받았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영국 정부의 건의를 받아 이같은 조처를 취했다. 기사 작위 박탈은 유죄평결을 받은 범죄자 등에 한해서만 이뤄져왔다.
굿윈은 금융위기가 고조되던 지난 2007년 네덜란드 은행인 에이비엔(ABN)암로를 비싼 가격에 매수해 스코틀랜드왕립은행의 경영을 부실화시켜, 모두 450억파운드의 정부자금에 의한 구제금융을 받게 했다. 굿윈은 이런 경영부실 책임에도 은행을 떠난 뒤 2009년 65만파운드의 연금을 받아 비난에 시달리다가, 연금이 34만2천파운드로 줄었다. 특히 그는 의회 위원회에서 자신의 행동에 대해 더 사과할 것이 없다고 말해, 공분을 사기도 했다.
그의 퇴임 뒤 스코틀랜드왕립은행에서 수천명의 직원이 정리해고 되는 등 은행권에 충격을 주자, 그의 작위를 박탈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다. 정치권은 일제히 환영을 표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와 에드 밀리밴드 노동당 당수까지 나서 이 조처를 환영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내각 대변인도 공식성명을 내고 “스코틀랜드왕립은행 총재로서 그의 행동들의 규모나 강도 때문에 이런 예외적인 경우를 만들어냈다”고 환영했다. 밀리밴드 당수는 “보너스 문화를 바꾸고 은행 이사회에서의 적절한 책임을 지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민재판’ 식이라는 비판도 있다. 사이먼 워커 디렉터즈연구소 사무총장은 이 조처를 ‘히스테리’라며 “범죄자에 대해 작위를 박탈하는 것은 옳지만, 어떤 사람이 싫어한다고 해서 범죄혐의도 없는데 작위를 박탈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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