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 지지서명 트집잡아 야당후보 대선 출마 차단
자치단체장 직선제도 폐지…사실상 대통령 임명제로
야권인사 방송 출연시키려다 정치토크쇼 일주일만에 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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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러시아 대선 1차 투표. ‘보리스 옐친 당시 대통령 35%’ 대 ‘겐나디 주가노프 공산당 의장 32%’의 접전이 펼쳐졌다. 옐친은 2차 결선투표까지 가서야 주가노프를 눌렀다. 16년 전 러시아에서는 이런 박빙 승부가 가능했다.
#2012년 대선. 공산당 겐나디 주가노프, 자유민주당 블라디미르 지리놉스키, 정의러시아당 세르게이 미로노프, 무소속인 재벌 미하일 프로호로프가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한테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러나 푸틴의 당선 가능성은 100%다. 그가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로 3선을 확정지을 것이냐, 2차 결선까지 갈 것이냐 정도가 이슈라면 이슈다.
러시아 야권은 지난해 연말 총선 부정선거 이후 반정부 시위라는 호재에도 불구하고 변변한 ‘푸틴 대항마’ 하나 내놓지 못했다. 반정부 시위대 내부에서조차 “십몇년째 주가노프와 지리놉스키냐. 그들은 정치적 루저다. 차라리 푸틴이 낫다”라거나 “미로노프와 프로호로프는 경험이 부족하다”는 등 ‘인물론’이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야권의 인물난 역시, 푸틴이 정교하게 짜놓은 중앙집권적 정치제도의 단면이다.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 출신으로, 조직사업과 전략에 능했던 푸틴은 옐친 시기 ‘여소야대’ 정치·정당 구도를 근본적으로 바꿔놨다. 선거 관련법을 여당에 유리하게 고친 것은 결정타였다. 러시아 총선은 원래 선거구제와 정당명부제의 ‘50 대 50’ 혼합제였는데, 이를 100% 정당명부제로 고쳤다. 이에 따라 7% 이상 득표할 때만 득표율대로 의석을 배정받고, 그 이하를 득표한 정당은 의회 진출이 불가능해졌다. 의회 진출 정당의 소속이 아닌 후보가 대선에 출마하려면 200만명의 지지 서명을 받게 해 후보 등록을 막았다. 이번 대선에서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자유주의 개혁성향 야당인 야블로코당 후보 그리고리 야블린스키에 대해 “서명 25% 이상이 가짜”라며 등록을 거부했다.
이렇게 해서도 안 되면 합법으로 무장한 공권력으로 대항마를 짓밟았다. 러시아의 석유재벌이자 정치적 영향력도 막강했던 미하일 호도르콥스키는 야당을 지원하며 세를 불리려다 2003년 탈세 혐의 등으로 쇠고랑을 찼다. 중앙정부의 힘이 약했던 시절 지방을 주름잡던 단체장들은 2004년 지방자치단체장 직선제 폐지로 제압했다. 푸틴은 해당 지역 의회선거에서 이긴 정당이 대통령에게 3명 이상의 복수후보를 추천하면 대통령이 그중 한명을 임명하는 ‘사실상의 대통령 임명제’를 실시했다. 지역 정치인들도 이렇게 푸틴의 대항마가 아닌 애완견으로 길들여졌다.
물론 이런 ‘전략’이 가능했던 건, 언론과 여론에 대한 조작과 통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러시아 오락전문 채널 <엠티브이>(MTV)는 지난달 14일 시작한 지 1주일밖에 안 된 정치토크쇼를 폐지했다. 러시아 안팎에서는 총선 부정선거 국면 이후 유력한 야권 인사로 떠오른 반부패 블로거 알렉세이 나발니를 출연시키려다 제동이 걸린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총선과 이번 대선을 계기로, 러시아의 정치 지형에도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장세호 한국외대 러시아연구소 연구교수는 “권위주의 정치체제에 대한 불만이 가속화되고 있다”며 “지난해 연말 총선 부정선거와 대규모 반정부 시위 사태를 계기로 다원주의적인 정치구도가 생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러시아 민족우호대 정치학 석사과정 이리나 벨리코바(25)도 “가까운 미래에 야당들이 통일된 정당 토대를 마련해, 푸틴의 통합러시아당을 상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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