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 핵실험현장서 고작 “눈 감고 돌아 있으라”
폴리네시아섬 피해자 720명
10여년만에 힘겨운 손배투쟁
폴리네시아섬 피해자 720명
10여년만에 힘겨운 손배투쟁
지난 1968년 남태평양 폴리네시아의 타하섬에서 농사를 짓던 뤼시앵 파라는 더 나은 돈벌이를 찾아 인근 모루로아 섬으로 이사했다. 새로운 일자리는 프랑스의 핵실험 시설 노역이었다. 파라는 그 곳에서 8년간 일하다 몸이 안좋아 그만 뒀으나 30년이 지난 2004년 암으로 숨졌다. 그의 아내는 이듬해 프랑스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지만 지금까지 아무런 배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주민과 군무원 등 720명이 프랑스 정부를 상대로 힘겨운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다고 프랑스 일간 <르몽드>가 최근 보도했다. 자신들이 앓고 있는 각종 암 등 난치병이 과거 프랑스가 실시한 핵실험의 후유증이라며 손해배상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720명중 지금까지 손해배상을 받은 사람은 단 4명에 불과하다. 그나마 폴리네시아 원주민이 소송은 모조리 기각됐다.
앞서 프랑스는 1966년부터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NTBT)이 발효된 1996년까지 30년 동안 폴리네시아 모루로아섬 일대의 환초에서 210차례에 걸쳐 핵폭탄 실험을 했다. 1960년 첫 핵실험은 당시 식민지인 알제리의 사하라 사막에서 실시했으나, 1962년 알제리가 독립하자 전세계의 비난과 환경파괴 우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폴리네시아 군도에서 핵실험을 해온 것이다.
현지인 노동자들은 프랑스 당국이 방사능 보호장비는커녕 방사능 피폭의 위험성에 대한 교육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1998년 임파선 암 진단을 받은 로베르 부아랭은 “핵실험 당시 프랑스 당국자들은 우리에게 손으로 눈을 가리고 버섯구름을 등지고 돌아서라고만 했다”며 “다 잊고 싶지만 동료들이 하나둘 숨지는 것을 지켜보는 게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큰 기대는 하지도 않는다. 내 질병이 자녀들에게도 유전되는 지를 알고 싶은데, 프랑…스 당국은 배상할 사람이 줄어들도록 피해자들이 숨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프랑스 정부 쪽 변호사는 이들의 질병과 핵실험 사이에 상관관계가 불분명하며 핵실험의 위험성과 같은 논쟁거리는 소송 대상이 아니라는 논리를 내세운다. 폴리네시아 정부와 피해자들은 지난달 집권한 프랑스 사회당 정부의 장마르크 에로 총리 등 핵심 정치인들이 최근 몇년새 잇따라 폴리네시아 핵실험 피해자 배상법안을 제출하는 등 적극적 관심을 보였던 것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르몽드>는 전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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