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축약속 지킬 것으로 기대”
메르켈 총리 기존입장 고수
외무장관 “시한 연장은 논의”
사마라스 대표 ‘재협상’ 공약
앞으로 치열한 줄다리기 예고
메르켈 총리 기존입장 고수
외무장관 “시한 연장은 논의”
사마라스 대표 ‘재협상’ 공약
앞으로 치열한 줄다리기 예고
공은 이제 다시 독일로 넘어왔다.
그리스 국민들은 17일(현지시각) 투표를 통해 유로존 잔류를 선택했지만 그들 앞에 놓인 길이 평탄치만은 않다. 그리스에 수백조원을 빌려준 채권자들, 그중에서도 최대 채권자인 독일은 그리 크게 달라진 ‘패’를 꺼내 보이지 않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17일 저녁 안도니스 사마라스 신민당 당수과의 통화에서 축하 인사를 전하면서도 “그리스가 유럽연합과의 약속을 지킬 것으로 기대한다”며 기존 재정긴축안의 준수를 촉구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반면 기도 베스터벨레 독일 외무장관은 “구제금융안의 핵심이 변화될 수는 없겠지만, (그리스 재총선에 따른) 정치적인 휴지기가 있었기 때문에 시한에 대해서는 다시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일부 양보할 뜻이 있음을 시사했다. 일견 엇갈려 보일 수 있지만 결국 ‘시한 연장’ 정도는 논의해볼 수 있겠다는 태도다. 일부에선 이자율 인하 방안도 거론된다.
그리스로선 독일을 비롯한 유럽연합과의 구제금융안 재협상에 사활적인 이해가 걸려 있다. 그리스는 지난 3월 1300억유로(약 191조원) 규모의 2차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160%에 이르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비율을 2020년에 120.5%로 낮추기로 합의했다. 이를 위해 앞으로 수년간 115억유로(약 17조원)의 추가 예산삭감을 핵심으로 한 재정건전화를 이행할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실업률 22%라는 숫자가 말해주듯, 불황에 처한 경제에 재정긴축이라는 처방은 그리스 경제를 더 깊은 불황의 나락 속으로 밀어넣고 있는 형국이다.
독일 총리와 장관의 이날 발언은 사실 그리스와 피할 수 없는 재협상을 앞두고 ‘기선’을 제압하겠다는 의미와 함께 독일 국민들을 의식한 ‘국내정치용’의 성격이 짙다. 독일 정치 상황 때문이다.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기독교민주당은 지난해부터 베를린을 비롯한 지방선거에서 잇따라 패배한 데 이어, 올해 5월에는 최대 선거구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지방선거에서 역대 최저 득표율인 26.3%로 사회민주당에 참패했다. 남유럽 국가들에 대한 막대한 규모의 지원이 패배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일궈온 ‘하나의 유럽’이라는 유럽의 꿈을 무산시킨 정치인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자 하는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국내 유권자들의 심판에서 자유로울 수도 없다.
독일 정부의 실세이자 대표적인 강경파인 볼프강 쇼이블레 재무장관은 17일 그리스 선거 뒤 낸 성명에서 “이번 선거는 광범위한 경제·재정 개혁에 대해 국민들이 찬성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석하면서 “사마라스 당수는 이미 구제금융안의 목표와 핵심 수단에 대한 약속을 천명한 바 있다”고 상기시켰다. 재정긴축안의 핵심 쟁점에 대한 재협상 시도에 반대한다는 경고를 한 셈이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독일과 다른 유럽연합 국가들이 물밑에서 대출금에 대한 이자 인하와 만기 연장을 포함한 양보안을 논의하고 있다”면서도 “재정긴축 목표치에 대한 변화는 이 안에 포함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독일의 양보가 이렇게 미약한 수준에 그칠 경우 그리스 국민들의 반발이 다시 거세지고 국제금융시장의 불안도 가중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사정 때문에 앞으로 그리스 구제금융안 재협상 과정에서 그리스와 채권국 사이에 치열한 밀고 당기기가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자국의 경쟁력에 비해 가치가 싼 유로 덕분에 성장을 구가해온 독일로서도 유로존 붕괴는 파국을 의미하기 때문에 타협안을 찾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독일인과 그리스인들이 서로 어느 정도 만족하며 ‘체면’은 세워줄 명분을 찾을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박현 기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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