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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그리스, ‘벼랑끝 모험’ 대신 ‘불행속 안정’ 선택

등록 2012-06-18 20:00수정 2012-06-18 22:31

총선결과 분석
신민당+사회당 연정구성 확실
유로존 파탄 ‘악역’은 일단 피해
사마라스 “유럽의 승리” 평가
구제금융 조건 재협상은 난제
“무엇보다 정부를 구성하고 나라를 안정시키는 게 중요했다.”

그리스의 퇴직한 여행사 직원 줄리아 오이케이아디스는 17일(현지시각) 자신이 신민당에 한 표를 던진 이유를 영국 <인디펜던트>에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달 6일 1차 총선 결과 결국 정부 구성이 무산돼 한달 넘게 그리스를 넘어 전세계를 긴장시킨 ‘불확실성’을 끝내고 싶어했다는 말이다.

반면 시리자(급진좌파연합)에 투표했다는 흐리사 밀로나는 “극심한 실업과 임금 하락 때문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다”며 “시리자가 나라를 어디로 이끌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과는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한 선박거래 중개인은 “어차피 파산할 건데, 그게 유로화 아래서든 드라크마(그리스의 옛 통화) 아래서든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갈등 속에 결국 그리스인들은 한판의 도박보다는 ‘불행 속의 안정’을 택했다. 구제금융 조건으로 부과된 긴축재정을 찬성하는 신민당과 확실한 연정 파트너가 될 사회당에 안정적인 과반수 의석을 몰아준 것이다. 17일 신민당은 29.7%를 득표해 129석, 사회당은 12.3%를 득표해 33석을 얻었다. 두 당 의석수를 합치면 162석으로, 전체 300석 중 과반수인 151석을 훌쩍 넘어선다. 2위 시리자는 26.9%를 득표해 71석을 확보했다. 1위 정당에 50석을 몰아주는 독특한 의석 배분 방식 때문에 득표율 차이에 비해 의석수 차이는 크게 벌어졌다.

신민당의 승리는 결국 그리스인들이 ‘유로화’에 마지막으로 한번 더 기회를 준 셈이라고 영국 <가디언>은 분석했다. 신민당과 시리자 모두 유로존 잔류와 구제금융 조건 재협상을 주장했지만, 선거전 와중에 신민당은 ‘유로화 잔류’, 시리자는 ‘유로화 탈출’을 주장하는 것으로 도식화돼 버렸다. 신민당 대표인 안도니스 사마라스(61)는 선거 결과가 발표된 뒤 “그리스인들이 유로존에 머물기를 선택했고 이제 유럽 내에서 그리스의 위치가 의심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이는 유럽의 승리”라고 말했다.

사실 이번 선거는 ‘그리스’를 넘어서는 ‘국제전’을 방불케 했다. 지난 9일 전해진 스페인의 ‘특혜성’ 구제금융 신청 소식은 긴축에 허덕이던 그리스인들 사이에 구제금융 조건 재협상 주장을 확산시키는 구실을 했다. 총선 결과가 유로존을 파국으로 이끌 수 있다는 각국 정상들의 ‘위협성’ 발언이 잇따랐고 급기야 독일판 <파이낸셜 타임스>가 ‘시리자에 투표 말라’는 1면 사설을 실어 선거개입 논란까지 불러일으켰다. 1국의 정치가 완전히 국제이슈가 되어버린 상태에서, 유로존 탈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공포’가 가혹한 구제금융 조건에 대한 ‘분노’를 가까스로 누른 모양새다. 이번 재총선의 투표율(58.8%)은 1차 투표(65.1%) 때보다 다소 낮아졌는데, 신민당 성향의 장년층이 적극 투표한 반면 기존 세력에 분노하면서도 급진세력에 미래를 맡기기엔 불안한 젊은층의 기권이 다소 늘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그리스인들로선 오히려 ‘절묘한’ 선택을 했다고도 볼 수 있다. 신민당에 1당을 안겨 ‘유로존 파탄’의 악역이 되는 것을 피하면서도, 시리자의 의석수를 늘려주며 지금까지 같은 조건으로는 구제금융이 불가하다는 목소리를 분명히 낸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신민당과 사마라스의 어깨 위에는 국민들에게 약속했던 구제금융 조건 재조정이라는 무거운 짐이 얹혔다. 하지만 26살에 의회에 진출해 초엘리트 코스를 거쳐온 ‘정치 9단’ 사마라스가 그 적임자인지에 대해서는 회의론도 있다. 그는 신민당 정부에서 외교장관과 문화장관 등을 거쳤다가 탈당한 뒤 1993년 신당을 창당해 신민당의 총선 패배를 초래했고, 2010년에는 긴축재정안에 찬성한 의원들을 제명할 정도로 극렬한 긴축재정 반대론자였다가 이제는 ‘긴축재정 전도사’ 노릇을 하고 있다. ‘총리가 되기 위한 외길’을 달려온 정략형 정치인인 셈이다.

그가 유럽연합과 그리스 국민들의 요구를 모두 충족할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영국 <비비시>(BBC)는 “신통찮은 재협상 결과에 그리스 국민들이 크게 실망스런 가을을 보내게 될 수도 있다”며 또다른 정치불안이 일어날 가능성을 경고했다.

이형섭 기자 sub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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