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티도 X’ 창당…전국 돌며 회견
금융위기 항의시위 과정서 조직화
‘위기 책임자 심판’ 등 파격 제안
“카리스마보다 시민 위한 정당”
주류 정치권 진입 가능성 미지수
금융위기 항의시위 과정서 조직화
‘위기 책임자 심판’ 등 파격 제안
“카리스마보다 시민 위한 정당”
주류 정치권 진입 가능성 미지수
* 인디그나도스 : 분노한 자들
“이미 죽은 자들이 설치고 있다. 아무도 그들에게 사망진단서를 내주지 않았을 뿐인데….”(스페인 풍자잡지 <몬골리아>의 곤잘로 오예 편집장)
‘오큐파이 월스트리트’(월가 점령) 운동의 원조로 불리는 스페인의 ‘인디그나도스’(분노한 자들) 운동이 정치 세력화에 본격적으로 나섰다고 영국 <가디언>이 21일치에서 보도했다. 운동의 주축이 모여 만든 ‘파르티도 에키스’(Partido X·이하 에키스), 곧 ‘무명씨들의 정당’이다. 2007~2008년 금융위기로 인한 초긴축 재정으로 실업과 사회복지 축소 등에 분노한 스페인 시민들이 2011년 5월15일 전국 58개 도시에서 동시다발 시위를 벌이며 시작된 인디그나도스 운동은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에키스의 표적은 정치권의 부패다.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36년 군사독재가 무너진 1970년대 중반 이후 스페인 정치권은 우파 인민당(PP)과 좌파 노동자당(PSOE)이 양분해왔다. 좌·우파를 막론하고 부패 혐의로 현재 사법당국의 수사를 받고 있는 정치인이 적어도 130명을 넘는단다. 에키스의 대변인 격인 연출가 겸 시민운동가 시모나 레비는 지난 8일 마드리드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스페인에는 좋게 말해 시민사회의 요구를 이해하지 못하는, 솔직히 말하면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인뿐”이라며 “모두 사라져야 할 존재들”이라고 말했다.
에키스는 자신을 ‘진보’로 규정한다. 좌파나 우파는 기존 정치권의 도식일 뿐이란 게다. 정강·정책은, 여전히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다. <가디언>은 “대부분의 신생 정당과 마찬가지로 (에키스도) 일부 분야의 정책이 설익은 모습”이라고 평했다. 그럼에도 대중적 관심사에 집중한 파격적인 제안이 눈길을 끈다. 이를테면, 경제 위기를 부른 금융인에 대한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식의 심판에 나서겠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이밖에도 △반부패 전담반 구성 △소상공인 재정 지원 확대 △최저임금 인상 △경영인 최고임금 상한제(평직원의 10배 이하) 등 정치권의 무능과 부패에 지친 시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정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주요 정책 결정을 위한 상시 국민투표제 도입을 통한 ‘참여민주주의’ 확대도 주요 정책으로 꼽힌다.
일부에선 에키스를 이탈리아 코미디언 베페 그릴로가 주도한 ‘5성운동’에 견주기도 한다. 지난 2월 치러진 이탈리아 총선에서 ‘모든 기성권력에 반대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참여한 5성운동이 25.5%의 지지율로 일약 원내 3당에 오른 바 있다.
이에 대해 에키스 쪽은 “우리는 시민의, 시민을 위한 정당을 추구한다. 대중 영합적인,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이끄는 정당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 단체는 지난 8일 마드리드 회견에서 내년 유럽의회 선거와 2015년 말로 예정된 스페인 총선 참여 여부에 대해 “아직 결정된 게 없다”고 밝혔다. 다만 이날을 기점으로 전국을 돌며 기자회견과 간담회를 이어가고 있다. 사회학자 알레한드로 나바스는 <가디언>과 한 인터뷰에서 “스페인 젊은이들은 기성 정치권을 거부하면서도 정부의 적극적인 구실을 기대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에키스의 주류 정치권 진입 가능성에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그는 “(모두가 아는 것처럼) 풀뿌리부터 출발한 소규모 정당과 조직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라는 점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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