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공직자 출신 86살 동갑
호텔서 약물 복용 숨져
“존엄사 제한 부당” 유서
찬반 논란 다시 불붙을 듯
호텔서 약물 복용 숨져
“존엄사 제한 부당” 유서
찬반 논란 다시 불붙을 듯
프랑스 파리의 고급 호텔에 투숙한 80대 부부가 동반 자살한 채 발견됐다. 두 사람은 유서에서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박탈한 당국을 거세게 비판해, 프랑스에서 존엄사를 둘러싼 논쟁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26일 <파리지앵> 등 현지 언론의 보도를 종합하면, 여든여섯살 동갑내기인 조르제트와 베르나르 카제 부부가 파리 샹젤리제 거리의 루테티아 호텔에 투숙한 것은 지난 21일이다. 투숙 당일 밤 두 사람은 고통 없이 숨을 거둘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한 약물을 함께 복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위성방송 <프랑스24>는 발견 당시 부부가 머리에 비닐봉지를 쓴 상태로 숨진 채 발견됐다고 전하기도 했다. 또 부부는 이튿날 아침식사를 방으로 배달해 달라고 미리 주문해, 주검이 빨리 발견될 수 있도록 하는 세심함을 보였다.
이에 따라 호텔 직원은 이들의 투숙 다음날 침대에 누워 서로 손을 잡은 채 숨진 두 사람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침대맡에는 유서 두 통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한 통은 가족에게, 다른 한 통은 사법당국에 남긴 것이었다. 두 사람은 유서에서 “내 자유는, 다른 사람의 자유를 가로막을 때에만 제한받을 수 있다. 자기 삶을 평화롭게 마감하고 싶은 사람들을 무슨 권리로 잔혹한 상황으로 몰아가느냐”며, ‘존엄사’를 불법으로 규정한 법체계를 통렬히 비판했다. 두 사람한테 질병이 있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부인 조르제트 카제는 문학과 라틴어 교수 출신으로 관련 교과서 집필진으로 활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편 베르나르 카제는 경제학자 겸 철학자로 오랜 세월 공직에 몸담았다. 두 사람의 장남은 <파리지앵>과 한 인터뷰에서 “부모님은 10대 시절부터 떨어져 생활한 적이 없을 정도다. 오래전부터 한날한시에 죽기로 약속하셨다. 한 분이 먼저 돌아가시거나, 몸을 가누지 못해 남에게 의지해야 하는 상황을 죽음 자체보다 두려워하셨다”고 말했다.
프랑스 정부는 2005년 관련 법을 개정해 의료진의 판단에 따라 환자의 생명을 단축할 수도 있는 진통제 처방을 허용했다. 하지만 연명치료 중단(소극적 존엄사)이나 약물 처방을 통한 사망 유도(적극적 존엄사)는 여전히 불법으로 규정돼 있다. 2012년 대선 당시 소극적 존엄사 도입을 공약으로 내건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최근 “연내에 관련 법안을 의회에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프랑스24>는 “각종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56~92%가 존엄사 합법화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가톨릭교회를 중심으로 한 반대 진영의 목소리가 여전히 큰 상태”라며 “카제 부부의 죽음으로 존엄사를 둘러싼 논쟁이 다시 전면에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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