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 중상입고 의식불명 269일
경찰, 추모인파에 최루탄·물대포
학생들 동맹휴업·일부 상가 철시도
경찰, 추모인파에 최루탄·물대포
학생들 동맹휴업·일부 상가 철시도
지난해 터키 전역을 휩쓴 반정부 시위 당시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던 10대 소년 베르킨 엘반이 11일 끝내 숨을 거뒀다. 그의 사망 소식에 한동안 주춤했던 반정부 시위가 터키 전역에서 다시 불붙으면서, 최근 잇따른 부패 스캔들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가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모양새다.
12일 <에이피>(AP) 통신 등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엘반의 부모는 11일 트위터 계정을 통해 “오전 7시께 아들이 숨을 거뒀다”고 알렸다. 엘반은 이스탄불의 게지공원 재개발 반대시위를 정부가 유혈진압한 이후 반정부 시위가 불을 뿜던 지난해 6월16일 집 근처로 빵을 사러 나갔다가 경찰이 쏜 최루탄에 머리에 중상을 입고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사건 당시 14살이던 엘반은 병상에서 269일을 버텼지만, 최근 몸 상태가 급격히 나빠진 것으로 전해졌다. 터키 일간 <후리예트>는 엘반 가족 변호인단의 말을 따 “사건 당시 45kg이던 엘반의 몸무게가 16kg까지 줄었고, 지난 6일 발작 증세를 보인데 이어 이튿날엔 심장마비가 왔다”고 전했다. 엘반은 게지공원 관련 반정부 시위 유혈진압으로 숨진 8번째이자 최연소 희생자다.
사망 소식이 전해진 직후부터 엘반이 입원해 있던 병원 주변으로 시민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의 어머니 귈심 엘반은 추모객들 앞에서 “내 아들을 데려간 것은 신이 아니라 에르도안”이라고 울부짖었다. 추모인파가 불어나자 경찰은 곧바로 최루탄을 퍼부으며 진압작전에 나섰다. 현장에 있던 야당 공화인민당(CHP) 소속 멜다 오누르 의원은 <로이터> 통신 등과의 인터뷰에서 “경찰은 도착하자마자 병원 정문 앞에서 영결식을 하고 있던 추모 인파를 향해 최루탄을 퍼부었다. 병원 안까지 최루탄이 날아들었을 정도”라고 말했다.
시위 사태는 삽시간에 터키 전역으로 번졌다. 전국 각지에서 고교생과 대학생들이 동맹휴학을 선포하고 거리로 몰려나왔다. 엘반이 살던 이스탄불의 옥메이다니 지역에선 상점들이 집단 철시에 들어갔다. 앙카라·안탈랴·이즈미르 등에서도 밤늦은 시각까지 에르도안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대가 물대포와 최루탄을 퍼붓는 경찰에 맞서 격렬한 투석전을 이어갔다.
엘반 사건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는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앞서 에르도안 총리는 지난해 6월 게지공원 시위 사태와 관련해 되레 진압 경찰의 “영웅적 행동”을 칭송한 바 있다. 당시 진압작전 책임자들은 지금도 현업에서 일하고 있다. <후리예트>는 “엘반의 유족들은 12일 장례식을 치른 뒤 이 사건을 유럽인권법원(ECHR)에 제소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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