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정부 친러세력 무력진압 땐
러시아계 주민 보호 명분 개입가능
대선 열릴 5월까지 분쟁 지속시켜
선거 무력화·연방제 요구 관철 속내
러시아계 주민 보호 명분 개입가능
대선 열릴 5월까지 분쟁 지속시켜
선거 무력화·연방제 요구 관철 속내
우크라이나 사태가 내전의 갈림길에 한걸음 더 다가섰다.
지난해 11월 친러시아 성향의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에 대한 반대 시위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사태는 야누코비치 정권 붕괴→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의 친러시아계 주민들의 분리독립 소요→우크라이나 정부의 무력 진압 최후통첩→친러시아계 주민 보호를 위한 러시아의 군사력 대응 다짐 등을 거치며 격화하고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 정부가 동부 지역에서 친러시아 무장세력이 관공서 점거 등을 풀지 않으면 14일 오전 9시(현지시각)를 기해 대대적 진압작전에 나서겠다는 최후통첩을 한 시한이 지나면서, 양쪽의 전면 충돌이라는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우크라이나 정부의 최후통첩으로 긴장이 고조되기는 했으나, 사태가 여기까지 온 원동력은 러시아의 계속적 밀어붙이기다. 러시아는 크림반도 합병 이후에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면적 압박을 계속해왔다. 미국 등 서방은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을 묵인하는 선에서 사태 해결을 모색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자신들의 지원 없이는 불가능한 친러시아 주민들의 무장 점거를 지렛대 삼아, 러시아계 주민들의 자치 등을 보장하는 연방제를 요구하며 우크라이나 신정부의 입지를 와해시키고 있다.
러시아의 압박은 오는 5월25일로 예정된 우크라이나 대선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새 헌법에 따라 새 정부를 구성하는 이 선거가 차질 없이 치러진다면,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주장도 명분을 잃기 때문이다. <가디언>과 <비비시> 등 외신들도 이 점을 지적하고 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우크라니아 현 정부가 “나라의 운명을 책임지지 못하는 무능력을 보였다”고 비난했다. 동부에서 러시아계 주민들의 소요가 계속된다면, 다음달 대선은 치러지기 힘들거나 반쪽 선거로 전락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우크라이나가 5월 대선에서 동부 지역의 분리독립을 묻는 주민투표를 동시에 치르자고 제안한 것도, 러시아의 의도를 의식한 조처다.
러시아가 압박을 지속하는 것은 우크라이나나 서방이 전면적 무력충돌의 위험을 감수할 수 없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당국에 러시아와 맞설 군사력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서방이 러시아를 상대로 군사개입을 한다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러시아로서는 우크라이나의 무력 진압이 자신들의 개입을 정당화하면서, 5월 선거를 무력화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미국 등 서방으로서는 러시아의 이런 강경책을 뻔히 알면서도 경제적·외교적 제재 외에는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서맨사 파워 유엔주재 미국 대사는 <에이비시>(ABC) 방송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친러시아 군사행동이 계속된다면 미국은 모스크바에 대한 제재를 강화할 준비가 돼 있다”며 “(오바마) 대통령은 러시아의 행동에 따라 에너지, 금융, 광업 등의 분야별 제재가 준비될 것임을 명확히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도 계속 외교·경제 제재에만 머물 수는 없는 압력을 받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에 대한 지배·점령에 나선다면, 서방이 반러 성향 주민들을 앞세운 내전·내란성 소요를 지원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내란 대책 전문가인 존 브레넌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최근 우크라이나를 방문했다는 러시아 언론들의 미확인 보도도 나왔다.
외교적 해결이 이뤄지지 못할 경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면적 충돌보다는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친러시아 무장세력들의 충돌이 빈번해지면서 내란성 소요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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