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세르비아계 민병대
보스니아계 8000여명 학살
주검 집단매장돼 신원확인 못끝내
보스니아계 8000여명 학살
주검 집단매장돼 신원확인 못끝내
9일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수도 사라예보 중심가에서 조촐한 추모행사가 열렸다. 19년 전 참혹하게 스러진 이들의 죽음을 기억하기 위한 자리다. 해마다 이맘때면 되풀이 되는 이 행사는 1992~95년 발칸반도를 피로 물들였던 보스니아 내전의 참극을 상징한다.
세르비아·크로아티아·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등 6개 공화국과 코소보 등 2개 자치주로 이뤄진 연방제 국가였던 유고슬라비아가 해체의 길로 접어든 것은 냉전 막바지인 1990년의 일이다. 각 공화국이 앞다퉈 독립을 선포했고,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도 주민투표를 거쳐 1992년 3월 독립국가가 됐다. 하지만 세르비아계 주민들이 이에 반발해 ‘스릅스카 공화국’을 선포했고, 결국 내전이 불을 뿜었다.
발칸반도의 동쪽 끝자락, 산악지역에 자리잡은 스레브레니차는 소금광산과 온천으로 이름난 소도시다. 2013년 기준으로 1만5000여명이 살고 있다. 내전 발발 직전인 1991년 인구조사 때만 해도 스레브레니차의 인구는 3만6000여명에 이르렀다. 이 가운데 약 75%가 보스니아계(무슬림), 나머지는 세르비아계(동방정교)와 크로아티아계(가톨릭)였다.
내전이 막바지에 이른 1995년 7월11일 세르비아계 민병대가 스레브레니차로 들이닥쳤다. 현지에 주둔하고 있던 유엔 평화유지군은 갑자기 밀려든 세르비아계 민병대를 당해내지 못했다. 피의 살육이 이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발생한 유일한 ‘인종학살’로 기록된 스레브레니차 대학살이다.
당시 세르비아계 민병대는 나이를 불문하고 눈에 띄는 남성은 모조리 살해했다. 8000명이 넘는 희생자들의 주검은 여러 곳에 나눠 집단 매장됐다. 사건 발생 19년이 되도록 희생자 신원확인 작업이 이어지고 있는 이유다. <아에프페>(AFP) 통신은 “지난해까지 신원이 확인돼 추모공원에 안장된 희생자는 모두 6066명”이라며 “올해 추가로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 175명 가운데 최연소자는 사망 당시 14살이었다”고 전했다. 스레브레니차 학살을 주도해 ‘보스니아의 도살자’로 불렸던 라트코 믈라디치(72)는 2011년 5월 체포돼 전범재판을 받고 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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