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
국립문서보관소 ‘MI5’ 파일 공개
사생활 감시…교수 임용 등도 방해
미 FBI와 공조해 오펜하이머도 사찰
사생활 감시…교수 임용 등도 방해
미 FBI와 공조해 오펜하이머도 사찰
영국의 국내정보국(MI5)이 2012년 숨진 유명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사진)을 오래도록 사찰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국내정보국은 미국과 공조해 원자폭탄 개발자인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소련으로 망명할 것이라며 사찰을 시도하기도 했다.
23일(현지시각) 영국 국립문서보관소가 공개한 기록을 보면, 국내정보국은 홉스봄과 크리스토퍼 힐 등 진보 성향 학자들의 사생활까지 감시했다고 <가디언>이 보도했다. 이번에 공개된 기록에서 사찰 대상이 된 이들로는 저명한 대중적 역사학자인 앨런 존 퍼시벌 테일러 옥스퍼드대 교수와 작가 아이리스 머독, 윤리철학자 메리 워녹 등도 포함됐다. 홉스봄과 힐은 영국공산당에 가입한 전력으로, 나머지 이들은 반핵활동 등을 구실로 사찰당했다. 전화 도청은 물론 일상적 만남도 정보원들의 감시를 받았다.
홉스봄은 1942년부터 사찰을 당했는데, 국내정보국은 그의 파일에 ‘211,764’ 번호를 붙였다. 국내정보국은 “군 내에서 전복 활동 및 선전에 관여한 의혹”이 있다며, 그의 외무부 정치정보국 근무를 막기도 했다. 또 “그의 (첫) 부인과는 어려움이 있다”고 묘사하는 등 사생활도 감시했다. 홉스봄의 삼촌 해리에 대해서는 “긴 코를 가진, 외양적으로 절반은 유대인이며 냉소적이다”라고 적었다. 국내정보국은 홉스봄이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되는 것을 막았을 뿐만 아니라, <비비시> 출연도 방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힐에 대해서는 1950년 보고에서 첫 부인 아이네즈가 힐의 공산당 활동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고 적었다. 힐이 “많은 돈을 공산당에게 기부했다”는 이유로 그의 공산당 활동에 넌더리를 냈다는 것이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원자폭탄 개발자 오펜하이머의 소련 망명을 우려해, 1954년 영국을 방문하는 그를 감시하라고 국내정보국에 요청한 것으로도 드러났다. 연방수사국은 오펜하이머가 좌파 성향이 있다며 감시했다. 미국은 전문을 보내 “1954년 9월 오펜하이머가 프랑스를 통해 소련에 망명할 수도 있다. 그는 먼저 영국을 방문한 뒤 프랑스로 가서 소련으로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국내정보국은 나중에는 홉스봄과 힐 등이 모두 공산당원이기는 하지만 소련과의 연관은 없었다고 사찰 문건에 보고했다. 홉스봄은 사망하기 5년 전 자신에 대한 사찰기록을 공개하라고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