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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독일, 경제는 ‘슈퍼스타’ 국제무대에선 ‘머뭇거리는 마이스터’

등록 2014-11-04 20:32수정 2014-11-04 21:18

3일 독일 베를린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에 그려진 ‘형제의 키스’ 벽화 앞에서 관광객들이 벽화를 흉내내며 입맞춤하고 있다. 베를린 장벽의 일부인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에는 각국의 예술가들이 그린 벽화가 있다. 가장 유명한 ‘형제의 키스’는 러시아 화가가 1979년 소련 공산당 서기장 레오니트 브레즈네프(왼쪽)와 동독 공산당 서기장 에리히 호네커가 나눈 입맞춤을 묘사한 것이다. 이 벽화에는 ‘주여, 이 치명적 사랑을 이겨내고 살아남게 도와주소서’라는 부제가 쓰여 있다. 베를린/AFP 연합뉴스
3일 독일 베를린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에 그려진 ‘형제의 키스’ 벽화 앞에서 관광객들이 벽화를 흉내내며 입맞춤하고 있다. 베를린 장벽의 일부인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에는 각국의 예술가들이 그린 벽화가 있다. 가장 유명한 ‘형제의 키스’는 러시아 화가가 1979년 소련 공산당 서기장 레오니트 브레즈네프(왼쪽)와 동독 공산당 서기장 에리히 호네커가 나눈 입맞춤을 묘사한 것이다. 이 벽화에는 ‘주여, 이 치명적 사랑을 이겨내고 살아남게 도와주소서’라는 부제가 쓰여 있다. 베를린/AFP 연합뉴스
베를린 장벽 붕괴 25년

세계 4위 경제대국·유럽 중심국 성장
국제 무대서 위상맞는 ‘역할’은 못해
금융 위기 땐 지원보다 긴축 강요
주변국 경계·나치 트라우마 영향
메르켈 ‘은둔형’ 스타일도 한몫
오는 9일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꼭 25년이 되는 날이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이듬해 통일 독일과 1991년 옛 소련의 해체로 이어졌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을 주축으로 한 동서 진영의 냉전 시대도 막을 내렸다. 1945년 5월 독일이 연합군에 항복하면서 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만 해도 오늘날 독일의 모습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150여개 도시가 파괴되고, 교통 수단은 마비됐으며, 전기와 수도도 거의 없었다. 통화 가치는 바닥이었고 수백만명이 집을 잃고 굶주렸다.

오늘날 독일은 세계 4위의 경제대국이자 유럽연합(EU)의 중심 국가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 4만달러에, 유럽에서 가장 낮은 실업률(5.3%)과 문맹률(1% 미만)을 자랑한다. 미국 <시엔엔>(CNN) 방송은 최근 “21세기 독일 경제부흥의 뿌리는 산업혁명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지금처럼 경제 부문의 ‘슈퍼 스타’ 지위에 오른 것은 정확히 25년 전 가을(베를린 장벽 붕괴)에 시작됐다”고 평가했다. 독일은 전후 미국의 유럽 재건 프로그램인 마셜 플랜과 앞선 기술력으로 이미 1960년대에 ‘라인강의 기적’을 일궜지만, 지금처럼 독보적인 경제대국의 지위는 냉전 종식과 통일의 시너지 효과에 힘입은 바 크다는 얘기다.

하지만, 독일이 국제정치 무대에서도 경제적 위상에 걸맞은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평가가 많다. 미국 시사주간 <뉴스위크>는 최근 베를린 장벽 붕괴 25주년 특집기사에서 독일을 ‘불안, 고통, 그리고 머뭇거리는 유럽의 리더십’으로 표현했다. 잡지는 “가장 크고 강력한 경제력을 갖추고 유럽의 심장부에 위치하면서 유럽연합의 ‘조율’에 갈수록 큰 목소리를 내는 독일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라는 물음을 던진 뒤, “리더(지도적 국가)는 아니다. 독일에 더 잘 맞는 이미지는 주춤거리는 마이스터(거장)”라고 답했다.

현재 유럽연합에서 독일의 행보는 실제로 ‘머뭇거리는 리더십’에 딱 들어맞는다. 독일이 전면에 나서길 주저하는 이유로는 ‘경제적 자수성가의 경험’과 ‘나치즘의 트라우마’, 그리고 오랜 분단의 역사를 꼽을 수 있다.

2010년부터 유로존(유로화 사용 국가)을 휩쓴 금융위기와 재정위기 상황에서, 독일은 파산 직전 국가들에 대한 부채 탕감 등 근본적 해결책을 내놓기보다 가혹한 긴축과 구조조정을 전제로 한 구제금융 지원 방식을 고집해 주변국들의 원성을 샀다. 독일은 특히 프랑스가 주도한 유럽연합 차원의 독자적인 지원 주장을 싸늘하게 일축하고, 국제통화기금(IMF)을 해결사로 끌어들이면서 프랑스와 상당한 갈등을 빚었다. 여기에는 독일이 패전 뒤 경제 회생 과정에서 막대한 전쟁보상금을 지불해가며 뼈를 깎는 고통을 견뎌야 했던 쓰라린 기억과 남유럽 일부 국가들의 방만한 재정 운용에 대한 반감이 깔려 있다.

정치적 영역에선, 나치즘의 어두운 그림자에서 아직도 자유롭지 못한 트라우마가 독일의 입지를 좁히는 가장 큰 이유다. 수백만명의 목슴을 앗아가고 유럽을 초토화한 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가라는 역사 인식이 독일인을 위축시킨다. 독일 시사주간 <슈피겔>은 최근 “독일은 1945년 패전 당시까지 통일국가였던 시절이 단 74년에 불과한데다, 대다수 독일인들은 나치즘의 수치스런 과거 탓에 자신의 정체성으로 ‘유럽인’을 ‘독일인’보다 앞세운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독일이 정치, 군사적으로 거대해지는 것에 대한 영국·프랑스·러시아 등 주변 유럽 강대국들의 뿌리 깊은 경계심과 견제도 독일 리더십의 행사에 큰 제약 요소다.

옛 동독 출신 정치인으로는 처음으로 2005년 총선에서 승리한 이래 지금까지 3연임을 하고 있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은둔형 리더십’이 독일의 조심스런 행보에 한 몫을 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슈피겔>은 최근 “독재 정권은 열린 담론과 갈등을 두려워 하면서 ‘통합’이라는 허상 위에서 번성하며 침묵은 동의로 간주한다”며 “메르켈 총리는 이런 정치 환경에서 성장했으며 정치 스타일에도 이런 요소가 반영돼 있다”고 꼬집었다. 메르켈 총리도 공개토론과 주도적 발언을 꺼리며 침묵을 편안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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