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 피케티 프랑스 파리경제대학의 토마 피케티 교수. 한겨레 자료 사진
<21세기 자본>으로 금융자본주의 세계의 빈부격차에 경종을 울린 ‘수퍼스타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사진) 파리경제대학 교수가 프랑스 최고 권위의 레지옹 도뇌르 훈장 수상을 거부했다. 한때 가까웠던 집권 사회당과 프랑수아 올랑드 정부의 보수화에 항의하며 ‘정부나 잘하라’는 일침을 가한 것이다.
피케티는 1일 수상 소식을 접한 뒤 <아에프페>(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난 누가 (훈장을 받을) 존경할 만한 사람인지를 결정하는 게 정부의 몫은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수상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또 “정부는 (훈장보다) 프랑스와 유럽의 (경제) 성장을 회복시키는 데 집중하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피케티의 수상 거부에는 올랑드 정부의 부유세(누진과세 강화) 폐지에 대한 비판의 뜻이 담겨 있다고 외신들은 분석했다. 올랑드 대통령은 2012년 대선 당시 반기업적이라는 비난을 무릅쓰고 연 100만유로(약 13억3천만원) 이상의 고소득자에게 최고 75%의 세금을 부과하겠다고 공약했다. 취임 뒤 각계의 반발과 법정 분쟁에도 2년간 이를 시행해 1000여명의 고소득자한테서 2013년 2억6000만유로, 2014년 1억6000만유로의 부유세를 거뒀다. 하지만 그동안 프랑스 정부의 재정적자는 847억유로에 달해, 부유세의 효과가 재정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현실적 벽에 부딪쳤다. 아울러 경기 침체로 프랑스 실업자 수는 지난해 350만명으로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고 성장률도 계속 정체돼 있다. 결국 ‘경제위기론’에 몰린 올랑드 정부는 지난해 말까지 통과시켜야 했던 부유세 연장 법안의 의회 표결을 추진하지 않았고, 부유세법의 효력은 1일로 끝났다. 올랑드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밤 발표한 신년사에서 실업률을 떨어뜨리기 위한 변화가 이행될 동안 주도권을 잡자며 “상당한 개혁”을 단행했다고 자랑했다. 이에 대해 피케티는 올랑드 대통령이 “상당히 잘못했다”고 비판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피케티는 올랑드 대통령의 오랜 연인이자 동지였던 전 사회당 당수 세골렌 루아얄이 2007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을 때 경제 자문역을 맡는 등 사회당과 오랜 인연을 맺어왔다. 2012년 대선 때는 니콜라 사르코지의 재선을 막기 위해 진보적 지식인들과 함께 올랑드 당시 사회당 후보에 대한 공개 지지를 선언하기도 했지만, 올랑드의 경제 정책이 보수화하자 이제는 비판 대열에 섰다. 현대 자본주의에서 빈부 격차가 사상 최고 수준으로 확대됐다고 진단하고 부유층 자산에 대한 누진세를 해법으로 제시한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은 전세계에서 150만부 이상 팔렸다.
이번 수상 거부로 피케티는 알베르토 카뮈와 장폴 사르트르, 시몬 보부아르, 클로드 모네 등에 이어 레지옹 도뇌르 훈장 거부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프랑스가 자랑하는 물리학자 피에르-마리 퀴리 부부와 영화배우 브리짓 바르도 역시 수상을 마다했다. 거부 이유는 각각 달랐지만 친사회주의자인 프랑스 민주노동동맹(CFDT) 노조의 에몬드 마리는 피케티와 비슷한 이유로 레지옹 도뇌르 수여를 거부한 적이 있다.
1802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제정한 레지옹 도뇌르 훈장은 매해 1월1일 프랑스 관보에 수상자를 발표한다. 올해는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장 티롤 툴루즈1대학 교수와 지난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소설가 파트리크 모디아노 등 모두 691명이 수상자로 선정됐다.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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