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저녁 독일 쾰른에서 수천명의 시민들이 외국인 혐오와 인종주의를 표방하는 극우집단인 ‘페기다’의 시위에 맞서 열린 사회를 지향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주요 건물들은 연대의 뜻으로 소등했다. 이날 베를린·슈투트가르트·드레스덴·함부르크 등 독일의 주요 도시에서 3만여명의 시민들이 ‘톨레랑스’ 시위에 참여했다. 쾰른/EPA 연합뉴스
극우단체 ‘페기다’의 잇단 시위에
주요 도시서 동시다발 맞불 시위
베를린서는 ‘극우 행진’ 저지하기도
폴크스바겐 등 기업들 관용 지지
주요 도시서 동시다발 맞불 시위
베를린서는 ‘극우 행진’ 저지하기도
폴크스바겐 등 기업들 관용 지지
“오늘, 수많은 쾰른 시민이 진정한 민주주의를 향한 의사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기 쾰른에 있는 우리들은 극우주의자, 외국인혐오주의자들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5일 오후 독일 쾰른 시청 광장. 위르겐 로테르스 시장이 이렇게 연설하자 3000여명의 시민들로부터 환호가 터져나왔다. 독일 극우파들의 ‘이슬람 배척’ 시위에 반대하는 맞불시위였다. 이날 베를린, 슈투트가르트, 쾰른, 함부르크, 드레스덴 등 독일 주요 도시에선 이처럼 정반대의 주장을 펼치는 시위가 동시에 벌어졌다고 <데페아>(dpa) 통신 등 외신들이 전했다. 한쪽은 인종주의와 외국인혐오주의를 내세운 포퓰리즘 단체인 ‘페기다(유럽의 이슬람화에 반대하는 ‘애국적 유럽인들’이란 뜻)’의 시위였다. 다른 한쪽은 이에 맞서 ‘톨레랑스(관용)’를 외치는 시위였다.
페기다 시위대는 지난해 10월부터 독일 동부 드레스덴을 중심으로 여러 도시에서 월요일마다 반 이슬람 시위를 벌여왔다. 올해 첫 시위인 이 날은 1만7500여명이 모였다. 그러나 갈수록 노골화하는 인종주의를 경계하는 움직임도 뚜렷해지고 있다. 이날 드레스덴에선 3000여명이 페기다에 반대하는 맞불 집회에 참여했다. 폴크스바겐 자동차 공장을 비롯한 주요 기업, 전력회사, 교회들은 일제히 전등과 조명을 끄는 방식으로 페기다 반대 시위에 연대의 뜻을 나타냈다. 폴크스바겐은 “우리는 개방되고 자유로운 민주사회를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드레스덴을 제외한 다른 도시들에선 톨레랑스 시위가 배타주의 시위를 압도했다. 쾰른에선 페기다 시위대가 250여명 정도였으나 반대 시위대는 10배가 넘는 3000여명이 모였다. 시위대의 펼침막엔 “포용력 있고 다양한 색깔의 쾰른을 위해”, “획일성이 아닌 다양성을” 같은 문구가 담겼다. 쾰른 대성당을 비롯해 라인강변의 주요 건물들과 교량들도 소등에 동참하면서 쾰른 중심가의 상당 지역이 한때 깊은 어둠에 잠겼다. 쾰른 대성당의 노르베르트 펠트호프 신부는 현지 <엔티브이>(N-TV)에 “페기다 시위 참가자들은 (그 곳에서) 나치주의자, 인종주의자, 극단주의자들을 볼 수 있을 것”이라며 “당신들은 실제 지지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지지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슈투트가르트에서도 최소 5000여명이 극우주의 반대 시위에 나섰다. 프리츠 쿤 시장(녹색당)은 “많은 시민이 이 도시에선 ‘차별’이 발 붙일 곳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수도 베를린에선 톨레랑스 시위에 나선 5000여명의 시민이 페기다 시위대 300여명이 시청을 출발해 독일 통일의 상징인 브란덴부르크문까지 행진하려던 것을 저지했다. 브란덴부르크문을 비추던 화려한 조명도 이날 저녁엔 빛을 거두었다.
페기다 시위대 쪽은 압도적인 반대 시위 물결에 대해 “정치적 억압”이라며 당혹감과 불만을 터뜨렸다. 드레스덴 시위를 조직한 카트린 외르텔은 지지자들 앞에서 “우리가 독일의 난민정책과 이주자 수용정책을 정당하게 비판하는 것을 두고 독일의 모든 주류 정당과 언론으로부터 인종주의자, 나치라는 모욕을 받는 것을 달리 어떻게 보겠느냐”고 항변했다.
앞서 지난 12월31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신년사에서 국민들에게 “마음 속에 편견과 냉담, 증오를 지닌 자들이 이끄는 시위에 참여하지 말아달라”고 촉구했다. 그는 페기다 시위대가 옛동독 시민들이 민주화 시위 때 외쳤던 “우리가 인민이다”란 구호를 외치는 것에 대해 “그들이 실제로 뜻하는 건 ‘너희들은 우리와 종교나 피부색이 다르므로 우리에게 속하지 않는다’라는 것이다”이라고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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