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총선서 집권 가능성 높아져
재벌 장악 언론 등 우선 조사
공항 매각 제동·구제금융 재협상
‘유로존 탈퇴’에서 잔류로 한발 후퇴
유럽연합·독일도 타협 뜻 내비쳐
재벌 장악 언론 등 우선 조사
공항 매각 제동·구제금융 재협상
‘유로존 탈퇴’에서 잔류로 한발 후퇴
유럽연합·독일도 타협 뜻 내비쳐
“올리가르히(재벌)는 우리의 최우선 개혁 대상이 될 것이다.”
그리스 제1야당 시리자(급진좌파연합)의 선임 경제대변인이자 예비내각의 개발장관인 요르고스 스타타키스는 시리자가 집권할 경우 그리스판 재벌인 ‘올리가르히’ 개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그는 7일치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처럼 선언하면서, 올리가르히의 언론 장악 철폐로 개혁을 시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올리가르히는 정치권에 돈을 대고 인맥을 활용해 이권을 따내며 그리스 경제의 상당 부분을 장악한 소수 기업 족벌을 일컫는다. 경제위기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처방에 반기를 든 그리스 좌파의 전인미답 행보가 금융자본이 지배해온 경제질서를 바꿀 수 있을지, 질문은 점점 묵직해지고 있다.
■ 시리자의 강온 전략
스타타키스는 시리자가 집권하면, 올리가르히의 장악력이 특히 강한 세 분야인 언론, 국가조달, 부동산 분야에 대한 조사를 먼저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집권 세력의 친구들에게 방송 면허를 공짜로 주는 정부의 관행을 끝낼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는 “그리스는 결코 전국적 차원의 상업방송 면허를 판매한 적이 없다”며 “따라서 현재 6개 정도의 상업채널은 모두 법적인 근거 없이 운영되고 있으며, 국가는 엄청난 수입을 잃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연합 등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은 뒤 채권단의 요구대로 연금 축소 등 긴축정책을 시행하면서 중산층 이하의 계층이 고통을 겪고 있는 반면, 올리가르히들은 헐값으로 나온 국가의 자산을 챙기면서 부를 더욱 독점하는 상황에 대한 대수술에 나서겠다는 선언이다.
시리자는 이미 진행중인 민영화 정책에도 제동을 걸겠다고 밝혔다. 그리스-독일 컨소시엄에 12억유로에 매각된 14개 지방공항 운영권, 중국과 아랍 투자자들에게 9억5000만유로에 넘긴 아테네공항 연안부지 공동개발권 등과 관련해, 스타타키스는 “의회 비준을 받아야 한다”며 집권할 경우 이를 저지하겠다고 확인했다.
하지만 시리자는 오는 25일 치러지는 조기 총선을 앞두고 최대 논란거리인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여부와 관련해서는 이전보다 유연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시리자는 5일 성명에서 “그렉시트는 시리자의 선택지에 없다”고 밝혔다. 이날 안도니스 사마라스 총리가 시리자가 집권하면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가 벌어질 것이라고 위협한 데 대한 반박이다. 시리자의 알렉시스 치프라스 대표도 최근 그리스의 유로존 잔류를 원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그가 2012년 총선에서 그리스의 구제금융안을 파기하고 부채상환 중단을 위협하던 자세에 견줘 온건한 전략으로 돌아선 것이다.
■ 타협 시사하는 국제사회
이번 총선에서 시리자가 집권할 가능성이 커지자, 유럽연합 등 국제사회는 시리자와의 협상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 그리스 부채 위기가 발발한 2010년에는 채권단의 요구를 듣지 않으면 유로존에서 쫓아내겠다고 위협하던 유럽연합은 이제 그리스의 유로존 잔류를 애걸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유럽연합은 5일 “유로존의 회원 자격은 되돌릴 수 없다”고 강조하면서, 총선 뒤 그리스의 구제금융 조건에 대해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재협상할 여지가 열려 있다고 밝혔다. 아니카 브라이트하르트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대변인은 “유로는 여기 그대로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는 유로존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을 드러낸 것이다. 유럽의회에서 자유주의 그룹을 이끌고 있는 기 베르호프스타트 전 벨기에 총리는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는)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그리스 국민들이 원치 않을뿐더러 유럽의 납세자들이 그리스한테 꿔준 수조 유로를 잃게 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리스에 대해 가장 강경한 자세를 보이던 독일도 한발 물러서고 있다. 독일 정부의 대변인은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를 대비한 비상계획안을 준비했다는 <슈피겔>의 보도를 부인하며, 독일은 그리스가 유로존에 잔류하기를 원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시리자의 치프라스 당수는 연일 “긴축은 비이성적이고 파괴적”이라며 “빚을 갚으려면, 대담한 재조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시리자가 집권하면 긴축 완화 및 추가적인 부채 탕감을 거세게 요구하겠다는 것을 예고한 것이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