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프랑스 리옹에서 열린 프랑스 시사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 희생자의 추모 집회에서 한 여성이 언론을 상징하는 펜을 들고 울고 있다. AFP 연합뉴스
극우 르펜, 언론사 테러에 “위선은 끝났다”…반이슬람 확산 우려
올랑드 “최고무기는 단합”…각국, 보복 경계·테러반대 연대 시위
올랑드 “최고무기는 단합”…각국, 보복 경계·테러반대 연대 시위
“유럽 사회가 위험한 순간에 직면했다.”
무장 괴한들이 7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 한복판에 있는 시사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사무실을 공격해 언론인 등 12명을 살해한 테러의 충격이 유럽을 뒤흔들고 있다. ‘표현의 자유’를 상징하는 언론사가 이슬람을 모독했다는 종교적 이유로 자동소총과 로켓포탄으로 무장한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을 받은 건 전례가 없는 일이다. <프랑스 24> 방송은 8일 “이번 테러는 프랑스혁명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프랑스 저널리즘의 존중받는 전통을 강타했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표현의 자유’라는 근대적 신념, 정교분리 원칙의 세속주의, ‘종교의 절대성’이라는 이슬람주의가 뒤엉킨 ‘가치 충돌’이 극단적으로 드러난 사건이다. 특히 최근 유럽에서 반이슬람주의와 외국인혐오주의를 내세운 극우세력이 갈수록 득세하는 가운데 벌어져 유럽을 ‘톨레랑스’(관용)와 극단주의라는 선택의 기로에 세웠다. 이주자 급증과 경제 침체에 따른 배타적 분위기까지 맞물린 이번 사태의 전개가 유럽 사회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테러는 프랑스가 식민지 알제리의 독립세력과 벌인 알제리전쟁(1954~1962년) 이후 프랑스 본토를 겨냥한 무장공격으로는 최악의 사건으로 기록되게 됐다. 프랑스의 이슬람 급진주의 전문가인 올리비에 로이는 “대중의 공포심을 자극하기 위해 최대의 충격 효과를 노렸다는 점에서 테러세력은 뜻을 이룬 셈”이라며 “(이슬람 극단주의의) 테러가 새로운 차원으로 가는 전환점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이번 테러로 유럽, 특히 프랑스 사회가 강조해온 ‘톨레랑스’도 시험대에 올랐다. 파리 소재의 런던인스티튜트대학의 앤드루 허시 교수는 “프랑스 정치인들은 프랑스와 아랍 세계의 갈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정치적 이유로 부인해왔지만, 프랑스 대중들은 그걸 느끼고 있다”고 지적했다. 파리 시민인 사미르 엘라트라시는 <뉴욕 타임스>에 “이슬라모포비아(이슬람 혐오증)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며 “일부 사람들은 이번과 같은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리스트들을 다른 무슬림과 한묶음으로 여기게 되고, 극우파 세력은 거기서 반사이득을 얻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프랑스 극우정당인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대표는 이날 당 웹사이트에 올린 동영상에서 “위선을 떠는 건 끝났다”며 “이슬람 근본주의에 대한 절대적 거부를 큰 목소리로 분명하게 선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독일에선 ‘페기다’(유럽의 이슬람화에 반대하는 ‘애국적 유럽인들’이라는 뜻)라는 포퓰리즘 단체가 넉달째 월요시위를 계속하면서 사회적 논쟁을 일으키고 있다. 영국에선 유럽연합 탈퇴와 이민자 제한을 주장하는 극우 성향의 영국독립당이 지난해 유럽연합 의회 선거에서 27.5%를 득표해 노동당과 보수당을 누르고 1위에 오르는 파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번 사건 이후 배타적 극단주의의 부상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저녁 텔레비전 생중계 연설에서 “우리의 최고 무기는 단합”이라며 “아무도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다. 자유가 잔혹함보다 강하다”고 강조했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각국의 도시들에선 “우리 모두가 ‘샤를리’다”라고 외치며 테러에 반대하는 연대시위가 확산되고 있다.
프랑스 철학자인 압데누르 비다르는 8일치 <르몽드>에 실린 기고문에서 “이것은 프랑스판 9·11 사태”라며 “고통과 분노에 대한 첫 반응은 ‘악에는 보복으로, 불의에는 폭력으로, 증오에는 증오로’ 대응하려는 유혹이기 마련이지만, 이는 온 사회가 집단적으로 거부해야 하는 위험”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은 우리의 정치 지도자, 제도, 가치, 나아가 우리 모두에게 프랑스의 강함을 증명할 역사적 순간”이라며 “증오에 집단적으로 저항하라”고 촉구했다. 프랑스 일간 <리베라시옹>의 로랑 조프랭 편집인도 이날 사설에서 “광신자들이 종교를 지키지는 못한다. 이슬람이 아닌 테러리즘, 신앙이 아닌 광신을 반대하는 모든 공화국 시민들과 함께 자유를 지켜나갈 것”이라며 톨레랑스의 가치를 강조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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