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법령집에 최종 기재된 마그나 카르타는 1225년 2월11일 헨리3세가 승인한 것이다. 마그나 카르타 초본은 1215년에 만들어졌다. 1225년 본은 현재까지 전해지는 마그나 카르타 진본 네개 중 하나이다.(왼쪽) ‘저스티스 얼라이언스’에서 ‘글로벌 로 서밋’ 기간 펼치는 반대 운동 포스터(오른쪽) 영국도서관 제공
23일 ‘글로벌 로 서밋’ 행사 막 올라
1인당 참가비 300만원 초호화 행사
BAE 회장 등 연설자 대부분 기업인
“행사 앞당겨 총선에 이용” 비판도
인권·변호사 단체 반대 시위 나서
1인당 참가비 300만원 초호화 행사
BAE 회장 등 연설자 대부분 기업인
“행사 앞당겨 총선에 이용” 비판도
인권·변호사 단체 반대 시위 나서
근대 헌법과 인권의 초석이 된 영국의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대헌장)가 올해로 제정 800주년을 맞는다.
마그나 카르타는 1215년 6월15일 전횡을 일삼던 존 왕의 실정과 세금 인상 등에 반발하는 귀족들의 요구를 받아들인 문서로, 귀족들의 권리를 확인한 것이었다. 그러나 17세기 전제군주의 권력을 제한하는 권리청원의 기초이자, 근대 헌법의 초석으로 평가된다. 특히 63개 조항 중 ‘자유민의 권리’를 언급한 39조와 ‘권리와 정의는 양도될 수 없다’는 40조는 이후 세계인권선언의 토대가 됐다. 6월15일 기념일을 앞두고 대헌장을 낳은 본고장에서는 마그나 카르타의 정신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이다.
런던에서는 23일부터 사흘간 ‘글로벌 로 서밋’(국제 법 회의)이 막을 올렸다. 영국 정부가 지원하는 이 행사는 마그나 카르타 제정 800주년을 기념해 ‘법과 국제 경제의 관계 논의’를 목표로 기획됐다. 60개국 정부 관계자 등 2000여명의 법조인·기업인들이 참석한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영국이 자유기업 체제와 경제 성장, 전세계 법치주의 촉진을 여전히 선도하고 있다는 증거”라며 행사를 축하했다. 하지만 1인당 참가비가 1760파운드(약 300만원)에 이르는 이 행사에 대한 시각이 곱지만은 않다.
일부에서는 영국 정부가 마그나 카르타 제정 기념을 명분으로, 실제로는 6월 총선을 앞둔 정치 행사로 이용하려고 한다고 비판한다. 기념일을 석달이나 앞두고 이런 행사를 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 행사가 기업 축제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고 <인디펜던트>는 22일 보도했다. 참가비가 터무니없이 비싼데다, 연설자 대다수가 영국 군수업체인 비에이이(BAE)시스템스 회장을 비롯한 기업인들이어서 마그나 카르타의 정신과 관계가 없다는 비판이 많다.
영국 법조계는 행사 반대 운동을 펼치고 있다. 영국법정변호사협회의 토니 크로스 회장은 동료 변호사들의 행사 보이콧 운동에도 ‘행사장 안에서 마그나 카르타 정신을 상기시키겠다’고 공언했다. 그는 “앞선 정부들이 법률구조시스템을 부차적 서비스로 취급해왔는데, 이야말로 사회가 요구하는 최우선 서비스”라고 말했다. 영국은 최근 예산 부족을 이유로 법률구조기금을 연 20억파운드에서 15억파운드로 삭감하고 소송 비용을 대폭 인상했다. 법조계는 이런 정책들이 사법정의 실현에 장애가 된다고 비판한다. 아울러 마그나 카르타의 정신에도 위배된다고 지적한다. 1949년 제정된 영국의 법률구조정책의 핵심은 법의 도움을 받기 어려운 가난한 이들을 지원하는 내용이어서,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원칙을 뒷받침해왔다. 국제앰네스티 등이 소속된 저스티스얼라이언스(정의 동맹)는 “법무부가 일부 지원한 이 행사는 법률구조기금을 삭감해 주머니가 빈 사람들이 법정에서 정의를 찾을 수 없도록 만든 조처와 같은 시기에 나왔다”고 꼬집었다.
한편 행사장 밖에서는 이 행사에 반대하는 ‘낫(Not) 글로벌 로 서밋’이 열렸다. 저스티스얼라이언스가 21일부터 진행한 도보행진의 마무리 자리였다. 출발지는 존 왕이 귀족들에게 사실상 항복하고 마그나 카르타로 ‘평화협정’을 맺은 템스강 남쪽 기슭의 러니미드, 도착지는 의회 앞이다. 코미디 공연 ‘법률구조를 위해 일어서자-정의가 그저 웃음거리가 됐다!’가 시위의 대미를 장식한다.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