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일랜드를 방문한 영국 찰스 왕세자(왼쪽)가 19일 골웨이에 위치한 아일랜드국립대학에서 아일랜드 공화주의를 표방하는 신페인당의 대표 게리 애덤스와 악수하고 있다. 골웨이/AFP 연합뉴스
12초. 두 남자의 악수는 순간이었지만, 영국과 북아일랜드의 피로 물든 수백년 분쟁의 역사에 화해의 빛을 비췄다.
나흘간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방문길에 오른 찰스 영국 왕세자는 19일 첫 일정으로 골웨이에 위치한 아일랜드국립대학을 찾았다. 행사장에 초청된 정치인들 가운데 신페인당 대표 게리 애덤스가 있었다. 한 손에 찻잔을 든 찰스 왕세자는 애덤스 대표와 손을 맞잡고 웃으며 몇마디를 나눴다. 영국 왕실의 일원이 북아일랜드 독립투쟁을 이끈 신페인당의 대표와 만난 것은 처음이다.
영국 언론들은 찰스 왕세자가 친척의 목숨을 앗아간 테러를 지지한 애덤스와 만난 것을 ‘역사적 순간’이라고 전했다. 15분에 걸친 비공개 회담을 마치고 나온 애덤스 대표는 “양쪽 모두 1968년 이후 일어난 일에 대한 유감을 표시했다”고 말했다.
신페인당은 영국으로부터 북아일랜드의 독립을 요구하며 30년 넘게 무장투쟁을 해온 아일랜드공화군(IRA)의 정치조직으로 불린다. 애덤스 대표가 언급한 ‘1968년 이후’란 북아일랜드에서 대영국 무장투쟁이 본격화된 시기다. 특히 아일랜드공화군은 1979년 8월29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부군이자 찰스의 아버지인 필립 마운트배튼의 삼촌인 루이스 마운트배튼 경이 탄 배에 폭탄 테러를 자행해 마운트배튼과 그 부인, 손자 등이 숨졌다.
애덤스 대표는 이 사건뿐 아니라 아일랜드공화군의 무장투쟁을 계속해서 옹호했던 인물로, 본인은 완강히 부인하지만 조직원이라는 의심을 받아왔다. 찰스 왕세자는 20일 마운트배튼이 숨진 현장도 방문한다.
화해의 움직임 뒤에는 원한이 걷히지 않은 분노의 목소리들도 있었다. 행사장 밖에서는 ‘학살 책임자’ 등의 손팻말을 든 시위대가 찰스 왕세자를 맞았다. 또 ‘피의 일요일’로 유명한 1972년 영국 공수부대의 벨파스트 민간인 학살 사건 때 숨진 10여명의 유족 등이 찰스 왕세자 방문 반대 시위를 벌였다.
아일랜드는 16세기 이후 영국 지배를 받아오다 1801년에는 공식 합병됐다. 1921년 독립전쟁 끝에 아일랜드자유국으로 독립했으나, 1949년에야 아일랜드공화국을 수립해 영연방에서 이탈해 완전한 주권국가가 됐다. 당시 영국령으로 남았던 북부의 6개 주가 북아일랜드다. 북아일랜드에서는 독립파와 통합파 간의 분쟁으로 1968년부터 북아일랜드 평화협정인 ‘성금요일협정’이 타결된 1998년까지 3500명 이상이 숨졌다.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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