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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가톨릭 국가’ 아일랜드, 동성결혼 국민투표로 첫 합법화

등록 2015-05-24 19:40

20년 전까지 이혼도 못했던
서유럽 가장 보수적인 나라
국민 62% 나이별 고른 지지
의회·대통령 비준 통과 예상
아일랜드가 국민투표로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첫 나라가 됐다. 더블린성 광장을 가득 메운 인파 사이로 무지갯빛 깃발이 넘실댔고, 환호가 하늘을 찔렀다. 나이가 지긋한 여성 한 쌍은 입을 맞췄다. 중년의 게이 커플은 서로 어깨를 감싸며 눈물을 터트렸다. 아일랜드의 선택은 이 나라가 대표적인 가톨릭 국가라는 점에서 더 주목받고 있다.

아일랜드 선거관리위는 23일(현지 시각) 동성결혼 합법화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 결과, 62.1%가 찬성표를 던졌다고 밝혔다. 전날 실시한 투표에서 반대표를 행사한 유권자는 37.9%에 불과했다. 이번 투표에서 120만1607명이 “결혼은 성별과 상관없이 법에 따라 두 사람에 의해 계약될 수 있다”는 문구로 헌법을 수정하자는 데 동의한 것이다. 기존 아일랜드 헌법은 결혼을 남성과 여성 사이에 하는 계약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눈에 띄는 것은 높은 투표율, 특히 젊은층의 투표율이었다. 선거권자 320만명 가운데 61%가 투표에 참여했는데, <가디언>은 1998년 북아일랜드 평화 합의문인 ‘성금요일 협정’의 찬반을 묻는 투표 때(56%)보다도 높은 수치라고 전했다. 영국 언론은 ‘세대별 투표’가 뚜렷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모든 연령대에서 고른 지지가 나왔다고 보도했다. 또 43개 선거구 가운데 1곳만 빼고 모든 지역에서 찬성률이 높게 나타나, 도시와 농촌의 의견이 갈릴 것이라는 우려도 불식했다.

22년 전만 해도 아일랜드는 동성애를 범죄로 취급했던 나라였다. 아일랜드가 동성애를 합법화한 것은 자국의 동성애 인권문제가 유럽인권재판소에까지 올라간 뒤인 1993년이었다. 아일랜드는 2010년 동성 커플에게 결혼한 부부와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는데, 이번 투표는 이 권리를 헌법으로 보장하는 것이다.

아일랜드는 전체 인구의 85%가 가톨릭 신자로, 서유럽에서 가장 보수적인 나라로 꼽혀왔다. 1995년에 이혼이 합법화됐고, 아직 임산부가 위험한 경우를 빼면 낙태를 금지하고 있다. 교육 과정도 가톨릭 교구의 영향력 아래 있다. 하지만 성직자들의 잇단 아동 성추행 파문과 이를 덮으려는 주교들의 행보는 아일랜드 교회의 위상을 크게 훼손했다고 <비비시>가 전했다. 아일랜드 주교들은 투표 직전까지 교인들에게 반대표를 행사하라고 독려했지만, 변화의 바람을 막지 못했다.

이번 투표는 아일랜드 동성애 인권활동가들의 오랜 노력의 결과다. 이들은 아일랜드 전역에 지역 조직을 세우며 풀뿌리운동을 펼쳤고,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젊은층을 공략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들이 지난 11월 이후 약 10만명의 새 유권자를 등록시켰다고 전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는 ‘투표하러 집으로’(#hometovote) 해시태그를 단 운동도 벌여졌는데, 수천명이 투표를 위해 귀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투표 당일 저녁 아일랜드로 향하는 런던발 비행기는 전석 매진됐다.

엔다 케니 총리는 이날 “오늘 아일랜드는 역사를 만들었다”며 “이 결정은 모든 시민을 동등한 존재로 만들며 결혼 제도도 강화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개헌을 위해서는 의회와 대통령의 비준이 필요하지만 이들이 반대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돼, 이르면 가을부터 아일랜드에서 합법 동성 부부가 탄생할 것으로 보인다.

유럽에서는 지난 2011년 네덜란드를 시작으로 벨기에, 포르투갈, 영국 등에서 동성결혼을 합법화했다. 미국에서는 현재 37개주가 동성결혼을 허용하는데, 미 연방법원은 현재 동성결혼이 헌법적 권리인지 여부를 심리 중이며 이달 말께 판결이 나올 예정이다.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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