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잉글랜드 민심 분화속
연방으로서 지위 위협받는 상황
상원의원 지난주 헌법제정 법안발의
연방으로서 지위 위협받는 상황
상원의원 지난주 헌법제정 법안발의
800년 만에 영국은 ‘성문헌법’의 필요성을 인정할 것인가?
근대 헌법과 인권의 초석이 된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대헌장) 서명 800주년을 앞두고 영국에서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1215년 6월15일 궁지에 몰린 존 왕은 귀족들의 권리를 확인해주는 마그나 카르타에 서명했다. 이 문서는 전제군주의 권력을 제한하고 의회의 우위를 확인한 권리청원의 기초이자, 수많은 헌법의 기초가 됐다. 세계인권선언의 토대가 되기도 한 마그나 카르타는 역사의 방향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정작 영국은 뉴질랜드, 이스라엘과 함께 아직 명문화된 헌법을 제정하지 않은 몇 안되는 ‘민주’ 국가로 남아있다.
물론 영국에도 엄연히 헌법이 존재한다. 수백년에 걸친 관습법과 의회법, 마그나 카르타, 권리장전과 같은 역사적 규약들에 흩어져 있을 뿐이다.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의 헌법학부는 누리집에서 영국의 ‘불문헌법’은 영국 역사의 산물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혁명 또는 정권교체를 경험한 나라들은 국가의 기본을 명문화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성문헌법이 필요했던 반면, 영국의 경우 상대적으로 긴 시간 동안 안정적인 정치체제 속에서 헌법이 진화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정확히 헌법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는 점이라고 짚었다.
영국 상원 소속 제러미 퍼비스 의원은 지난주 의회에 헌법 제정 법안을 발의했다. 그는 “무엇이 (영국) 연방을 하나로 묶어세우는지에 대한 정의가 없기 때문에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민족주의가 만발하고 있다”며 영국의 생존을 위해 국가의 정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영국의 헌법 제정 문제는 최근 영국이 처한 정치적 상황과도 맞물려 제기되고 있다. 퍼비스 의원의 말처럼 지난해 9월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투표와 지난달 영국 총선에서 확연하게 드러난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민심 분화가 논의를 촉발시켰다.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웨일스와 북아일랜드로 구성된 영국이 연방으로서의 지위를 점점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영국의 국가 권력 분립에 따른 변화도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2005년 노동당 정부는 ‘헌법개혁법’을 통과시켜 상원이 갖고 있던 최고사법기관의 권한을 대법원에 이양토록 했다. 이에 따라 2009년 상원으로부터 독립한 대법원이 설치됐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상원의 권한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고 있으며 유럽인권조약과 국내법의 관계, 유럽인권재판소와 영국 법원의 관계, 행정 각료와 사법부의 역할에 대한 논쟁도 끊이지 않고 있다”고 7일 지적했다.
지난주 해체된 영국 헌법 개편위원회를 이끌었던 그레이엄 앨런 하원의원은 미국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국민들은 거버넌스의 기본 규칙을 알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위원회는 킹스칼리지런던의 학자들과 4년에 걸친 노력 끝에 지난해 71쪽짜리 영국 헌법의 기초 모델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영국의 ‘전통’ 지지자들은 변화의 필요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상원의원이자 헌법학자인 필립 노턴은 헌법을 명문화하는 것은 유연하게 변화해야 하는 국가를 옴짝달싹할 수 없도록 얽어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헌법 제정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필요도 없고 실현 가능하지도 않다”고 단언했다.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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