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의 외딴 산악지대 농장 마을. 독일군이 거리를 순찰하고 게슈타포(나치의 비밀경찰)가 곳곳에 깔려 있다. 한밤중에도 독일군이 들이닥치고, 주민들은 생존을 위해 이웃을 배반한다. 3대가 사는 한 가족도 빈약한 배급식량과 살얼음 같은 공포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간다.
악몽 같은 ‘서바이벌 게임’이 지금 체코에서 재현되고 있다. 물론 진짜 현실은 아니다. 체코 <체스카텔레비제> 방송국이 최근 방영을 시작한 8부작 리얼리티 쇼 프로그램 <보호국에서의 휴가>에서 연출된 상황이다. 실제 가족과 주민들이 출연해 나치 점령 치하에서 살아남는 모습을 재연한 이 프로그램은 첫회 방송에서만 50만명이 시청할 만큼 화제를 모으고 있다.
프로그램은 나치의 광기가 유럽을 휩쓸던 1939년이 배경이다. ‘보호국’은 1938년 영국·프랑스·이탈리아·독일이 체코슬로바키아를 분할한 뮌헨 협정에 따라 독일이 점령한 체코 지역을 가리킨다. 당시의 복장을 입은 출연자들은 젖소 젖짜기 등 ‘생존 과제’들을 수행해야 한다. 모든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할 경우 최대 4만달러의 상금이 주어진다.
이 프로그램은 방영 전부터 체코 뿐 아니라 유럽 각국에서 논란을 낳았다. 어두운 역사를 가벼운 오락거리로 만든다는 게 비판의 핵심이다. <아에프페>(AFP) 통신은 “텔레비전 프로그램 장르의 기준에 비춰봐도 문화적으로 민감한 문제에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제작진도 프로그램의 ‘민감성’을 의식하지만 “역사를 기억하자는 게 취지”라고 말한다. 연출자인 조라 체인코바는 “지금과 다른 시대의 삶을 보여줄 수 있는 컨셉트를 검토하는 데 오랜 시간을 들였다. 고도의 진실성을 확보하려 애썼다”고 말했다. 그는 “시청자들이 그런 상황에서 ‘나라면 어떻게 할까’ 자문해보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체코의 역사기록 비영리기구 포스트벨룸의 미쿨라스 크로우파 대표는 “이 프로그램은 역사나 나치 시절을 말해주는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게임’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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