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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그리스 국민들 ‘긴축 거부’…불안을 누른 분노

등록 2015-07-06 19:58수정 2015-07-06 23:47

뉴스분석
분노는 불안보다 컸다. 하지만 승자도, 패자도 없었다. 세계가 주목한 국민투표는 막을 내렸지만, 힘겨운 선택만이 그리스와 유럽연합(EU) 전체에 남겨졌다. 그리스 위기를 배태한 유로존 체제의 모순을 해결하면서, 유럽통합의 이상을 계속 밀고 나갈 수 있느냐는 무거운 질문은 여전히 남았다.

5일(현지시각) 국민투표에서 그리스 유권자들은 국제 채권단이 제시한 추가 긴축정책 등 구제금융 협상안을 거부했다. 반대(OXI)가 61.3%, 찬성(NAI)은 38.7%였다. 선거 직전 여론조사에서 찬반이 각각 43~44%로 엇비슷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압도적인 부결이었다. 지난 5년 동안 채권단의 요구에 따라 그리스에 강요된 긴축 정책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분노와 거부는 단호했다.

그러나 이 투표로 그리스인들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당장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스의 시리자(급진좌파연합) 정부는 ‘반대’가 우세하면 채권단에 대한 협상력이 커진다고 설득해 왔지만, 그 효과는 미지수다. 국제 채권단의 강경 입장을 선도해온 독일의 지그마어 가브리엘 부총리는 투표 결과가 나온 뒤 “그리스와의 새로운 협상은 상상하기 힘들다”고 선언했다. 유로존 재무장관 모임인 유로그룹의 의장인 예룬 데이셀블룸 네덜란드 재무장관은 “(투표 결과는) 그리스의 미래에 매우 유감스러운 내용”이라며 비난조의 반응을 내놨다.

하지만 채권단이 경고해온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역시 당장은 벌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의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와 시리자 정부는 애초부터 유로존 탈퇴를 선택지로 고려하지 않았다. 유럽연합과 채권단 쪽도 그리스인들의 ‘찬성’ 표를 끌어내기 위해 불안을 부추기려고 ‘유로존 탈퇴’ 경고를 했을 뿐, 실제로 그렉시트를 감당할 처지는 아니다.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은 6일 그리스의 이번 ‘거부’는 “유럽에 대한 거부는 아닐 것이다”라고 했다.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는 그들이 끝까지 저지해야 할 마지노선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

그리스 강경파 재무장관 사의
채권단과 재협상 분위기 조성
대타협이냐 공멸이냐 갈림길
“유로존 모순 수정해야” 지적

그리스와 채권단 사이에 한가지 공통분모는 확인되고 있다. 그리스의 유로존 잔류와 유로존을 깨지 않고 지켜내겠다는 것이다. 채권단의 열쇠를 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5일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 긴급 전화 통화를 하면서 “그리스 국민들의 투표는 존중돼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고 총리실은 밝혔다. 사태를 여기까지 끌고 온 메르켈 총리의 고민은 깊어졌다. 메르켈 총리는 6일 급히 파리로 가 올랑드 대통령과 이번 사태를 논의하고, 7일엔 유로존 정상회의에 참석한다.

그리스도 대화 재개를 위한 신호를 보내고 있다. 부채 탕감, 추가 긴축 거부 등을 강하게 주장하면서 그리스 쪽의 협상을 주도해온 야니스 바루파키스 재무장관은 6일 전격적으로 사임을 발표했다. 그와의 협상을 꺼리는 채권단 쪽의 체면을 살려주려는 행보다. 남은 것은 재개될 그리스와 채권단의 협상에서 양쪽이 어떤 양보안을 내놓을 수 있느냐다.

시장의 주류들은 여전히 그리스에 대한 강경 입장을 주문하지만, 이제 그리스인들의 분노와 어려움을 이해하고 그리스 쪽의 논리를 인정해야 문제를 풀 수 있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6일 “그리스 부채는 완전히 상환될 수 없으며, 보다 현실적인 해법을 인정하는 겸손함을 가져야 한다”며 “유럽연합 지도자들은 그리스 국민에게 동정심을 보이고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파올로 젠틸로니 이탈리아 외무장관은 “이제 다시 합의를 위해 노력할 때”라는 메시지를 트위터에 올렸다.

7일 소집되는 유로존 정상회의와 재무장관 회의는 사태의 향방을 가늠할 분수령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의 긴급유동성지원(ELA)을 확대해 그리스 은행들을 연쇄 파산에서 살려낼 수 있을지는 가장 임박한 현안이다. 긴급유동성지원이 확대되지 않으면, 그리스 은행들은 7일로 예정된 영업 재개 이후 곧 지급불능 상태에 빠지게 된다. 파국을 막을 타협책이 나올 수 있을지 주목된다.

나아가 그리스 위기의 근본 원인인 유로존 체제의 모순을 유럽연합 지도자들이 인정하는 것이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향한 출발점이다. 독일과 그리스 등 경제력이 현격히 차이 나는 국가들이 단일통화 유로를 사용하면서, 무차별적인 재정·경제정책을 적용한 유로존 체제의 필연적인 부작용이 이번 그리스 부채위기이다. 그 고통은 유로존의 경제적 약자인 그리스, 그 가운데서도 서민층과 빈곤층에 고스란히 돌아갔다. 지난 5년간 긴축 정책의 결과, 오히려 그리스의 부채는 늘어나고 국내총생산(GDP)의 25%가 줄고, 청년실업률은 50%까지 치솟았다. 그 희생을 고스란히 떠안은 이들의 분노가 이번 국민투표에서 채권단의 긴축 요구에 대한 단호한 ‘거부’로 나타났다. 결국 유로존 회원국 각자의 경제력에 걸맞게 재정 등 경제정책에 융통성을 두게 하고, 기존 긴축정책을 수정하는 것이 위기에 빠진 유로존을 지킬 수 있는 근본 처방이라고 폴 크루그먼, 조지프 스티글리츠, 제프리 색스 등 많은 저명한 경제학자들이 지적하고 있다.

메르켈 총리 등 유럽연합 지도자들은 유럽의 통합이라는 진보적 이상을 강조하면서도, 그리스와의 협상에서는 시장근본주의적 처방에 의존하는 모순을 보여왔다. 유럽은 이 모순을 바로잡고 이상을 달성할 수 있을까? 그리스 국민투표는 유럽통합의 이상을 다시 묻고 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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