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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긴축정책은 불황을 악화시켰고 구제금융은 채권은행만 살렸다

등록 2015-07-08 19:55수정 2015-07-08 22:39

[정의길의 긴급진단] 흔들리는 유로존
그리스 구제금융 왜 실패했나
그리스는 2009년 말 그때까지 감춰왔던 재정적자 실태를 고백하며 본격적으로 부채 위기에 빠져들었다. 2009년 2997억유로(국내총생산 대비 129.7%)였던 부채는 2010년 3295억유로(148.3%)로 걷잡을 수 없게 늘어갔다.

여기서 한가지 가정을 해보자. 만약 그리스가 독자 통화인 드라크마를 사용하고 있었고, 당시가 1930년대 이후 최악의 세계 경제위기 때가 아니라는 가정이다. 드라크마는 걷잡을 수 없이 폭락했을 것이다. 외국인한테 값싼 물가는 그리스를 더욱 매력적인 관광지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스는 통화 경쟁력을 가지고 내수와 수출 붐으로 경기를 회복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또 구제금융 지원이 덧붙여진다면, 그리스 위기는 국경을 넘어 확산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에게는 값이 싸질 드라크마가 없었고, 자신의 경제력에 비해 고평가된 유로화에 매여 있었다. 더구나, 세계적 불황은 그리스를 찾는 관광객을 줄였고 주요 산업인 해운업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금융위기가 발발하기 직전인 2008년 7월 1유로당 1.6달러를 넘어 최고치를 기록한 유로는 1.2달러대까지 떨어졌다가 2009년 3월부터 다시 올라 11월에는 1.5달러대를 넘는 등 다시 최고치에 근접했다. 이 때가 바로 그리스가 자신들의 부채 상황을 실토한 때다. 더이상 견딜 수가 없는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그리스 위기는 유로존 위기였다. 그리스가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유럽연합과 유럽중앙은행(ECB)이 나서 해결할 문제였다. 2010년 5월 유럽연합, 유럽중앙은행, 국제통화기금(IMF)이라는 ‘트로이카’ 국제 채권단은 그리스에 1100억유로의 구제금융을 제공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리스에게 고통스런 긴축을 부과했으나, 채무 경감은 없었다. 그리스가 감춰온 부채의 어마어마한 규모를 실토했을 때, 그리스 국채의 이자율은 6%대였다. 2010년을 넘으며 국내총생산 대비 150%에 육박하는 부채에 이 이자율을 적용해보자. 그리스는 국내총생산의 9%, 정부 수입의 30%를 채권단에 이자로 줘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이 이자율은 2012년 30%에 근접한다.

그리스의 부채는 2011년 3552억유로로 국내총생산 대비 170.3%로 더욱 늘어났다. 그리스 위기는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등 유럽연합의 주변 국가로 번져갔다. 이들 국가에는 ‘돼지들’(PIGS)이라는 모욕적 호칭이 붙었다.

미국은 2008년 자국에서 금융위기가 벌어지자 신속히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을 동원해 대규모 채권 매입 등 양적완화를 실시해, 이때쯤이면 금융위기의 불을 껐다. 그러나, 유럽연합은 미국의 연방정부가 아니었고, 유럽중앙은행도 미국의 연준이 아니었다. 그리스도 미국의 한 주가 아니었다. 번지는 부채위기 앞에서 독일과 유럽중앙은행은 여전히 쭈뼜쭈뼜했다. 유럽연합과 유로존은 정상회의와 재무장관 회의만 수없이 반복하며, 그리스의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만 비난할 뿐이었다.

ECB 등 2010년 구제금융 제공
긴축만 강요하고 부채 탕감 없어
2011년 부채 3552억유로로 급증

2차례 투입 구제금융 2400억유로
대부분 채권자 손에…그리스는 빈손

유로존은 느리게 대응했고
그리스가 할수 있는건 없었다

구제금융 전후 그리스 부채 구성 비교
구제금융 전후 그리스 부채 구성 비교

독일과 유럽중앙은행에도 고민은 있었다. 그리스 하나라면 감당할 수 있었을 것이다. 유로존 전체 국내총생산의 4% 정도인 그리스 부채를 절반으로 줄여줘도 감당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포르투갈과 아일랜드가 구제금융 대열에 가세하고, 이 세 나라 경제를 합친 것보다도 큰 스페인도 곧 합류했다. 그리고, 유로존의 3번째 국가인 이탈리아도 있었다. 그리스 위기를 초반에 봉쇄하지 못한 것이 이들 국가로 번졌는지, 아니면 이들 국가에 금융위기가 발생하며 그리스 위기에 대한 대처 능력을 잃은 것인지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같은 논쟁이다.

어쨌든 트로이카는 2011년 여름, 그리스에 대한 2차 구제금융에 합의하고, 이를 2012년 2월에야 1300억유로 규모로 확정했다. 이번에는 ‘헤어컷’이라는 부채 경감이 있었다. 민간 투자자들은 채권 액면가의 52%인 약 1000억유로를 상각해야 했다. 이런 부채 경감을 놓고 다투느라 2차 구제금융이 늦어진 것이었다. 이때는 이미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로 위기가 번져, 이들 국가들도 어떠한 형태로든 구제금융을 실시해야만 하는 시점이었다.

그리스에 대한 2차 구제금융에 합의하던 2011년 말 유럽 부채위기가 깊어지고 길어지자, 미국에서 실시된 것처럼 대규모 채권 매입 등 양적완화 정책을 실시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했다. 유럽중앙은행이 회원국의 국채를 직접 매입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독일이 주도권을 쥔 유럽중앙은행은 소극적이었다. 인플레에 대한 역사적인 악몽을 가진 독일의 입김 때문이었다. 유럽중앙은행은 오히려 2011년 4월과 7월 두 차례에 걸쳐 정책금리를 1%에서 1.5%로 올리기까지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치적 이유가 있었다. 독일이 장악한 유럽중앙은행의 관리들은 위기에 빠진 회원국의 채권을 매입해주면, 그들의 재정 행태를 개혁할 압력이 사라진다는 이른바 ‘모럴 해저드’론을 공공연히 떠들었다.

2011년 말이 되어서야, 이탈리아의 임시 위기관리 정부의 총리에 마리오 몬티, 유럽중앙은행 총재에는 마리오 드라기가 나란히 취임했다. 테크노크라트 출신인 이 두 사람은 ‘슈퍼 마리오 형제’라는 별명을 얻으며, 유럽의 달라진 분위기를 전하려고 했다. 유럽중앙은행은 유럽 은행들에게 3년 만기로 장기대출을 해주는 프로그램을 확대했다. 그리고, 2012년 9월에는 미국처럼 채권 매입 프로그램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시장은 환호했으나, 너무 늦은 조처였다.

왜냐하면 그리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는 다른 ‘돼지’ 국가들과는 달랐다. 탈세의 만연과 정치적 불안 등으로 채권단이 요구하는 긴축 개혁정책의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이런 긴축정책은 그리스의 불황을 더욱 깊게 했다. 2차 구제금융 제공에 부과된 최저임금 22% 삭감 등은 국내에 정치적 저항을 불렀을 뿐만 아니라 구매력을 대폭 낮췄다.

무엇보다도 2020년까지 부채를 국내총생산 대비 120%로 낮춰야 하는 등 그리스에 부과된 목표는 달성하기 어려웠다. 그리스가 지불할 이자율이 5%로 낮아진다고 해도, 이자를 내는 데만 국내총생산의 6%가 들어간다. 2015년 현재 그리스 부채는 3230억유로로 부채위기가 시작될 당시보다도 커졌다.

두 차례에 걸쳐 제공된 구제금융 2400억유로는 어디로 간 걸일까?

구제금융을 통해 외국의 민간 채권자들은 대부분 빠져나갔다. 민간 채권자들은 2차 구제금융을 통해 보유한 그리스 국채 액면가의 50%만 받기로 하고 , 장기 저리 채권으로 교환하는 등 명목상 72%의 손실을 봤다고 평가된다. 하지만, 민간 채권자 대부분은 그리스 채권을 액면가보다 훨씬 싼값에 샀기 때문에, 실제 손실은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그리스 채무의 70%는 유럽중앙은행 등 공공 채권자에게 넘어갔고, 이들은 구제금융 과정에서 헤어컷 대상이 아니었다. 지금까지도 꼬박꼬박 이자를 받아왔다. ‘트로이카’ 등이 그리스에서 손해를 봤다는 독일 등 북유럽의 민간은행 등을 지원했다. 돈은 돌고 돈다.

구제금융이 결국 채권자들을 살리기 위해 대부분 투입됐는지, 그리스 국내에도 남았는지는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리스는 이런 구제금융에도 불구하고, 빚은 줄지 않고, 국내총생산은 25%나 축소되는 비극을 겪었다는 것이다.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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