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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한고비 넘겼지만…그리스 구제금융 최종 타결까지 ‘험로’

등록 2015-07-13 22:23

13일 오전 유로존 정상들이 밤샘 회의 끝에 그리스 3차 구제금융 협상안에 극적으로 합의한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브뤼셀/EPA 블룸버그 연합뉴스
13일 오전 유로존 정상들이 밤샘 회의 끝에 그리스 3차 구제금융 협상안에 극적으로 합의한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브뤼셀/EPA 블룸버그 연합뉴스
구제금융 협상 개시 합의
그리스 ‘국유자산 독립펀드’ 혹붙여
‘개혁 불가피 홍보’…역설적 성과
독일, 요구하던 모든 조건 관철
유럽연합 균열 초래…지도력 상처
유로존 정상회의가 밤샘협상을 거쳐 13일 합의한 것은 ‘그리스 구제금융’이 아니다. 그리스에 대한 3차 구제금융 협상을 재개하기로 합의했을 뿐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합의 이후 “오늘 밤 협상으로 판단하건대, 갈 길은 멀고 어려울 것이다”라고 말한 것도 이런 의미다.

■ 그리스의 백기투항인가?

그리스가 이번 협상에서 더 얻어낸 것은 사실상 없다. 오히려 500억유로 상당의 국유자산을 민영화하기 위해 독립 펀드로 조성해야 하는 혹까지 붙였다. 줄곧 요구해온 부채 경감에 대해서도 큰 성과는 없었다. 메르켈 총리는 직접적인 부채 경감은 없다며, 부채 상환 장기 유예 등의 방식을 앞으로 협상하겠다고만 밝혔다.

협상 막바지에 가장 큰 논란이 된 ‘그리스의 유로존 일시적 탈퇴’ 카드도 철회되긴 했으나, 이 과정에서 그리스의 유로존 축출을 지지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독일은 그리스가 합의된 구제금융 조건을 이행하지 못하면 그리스를 적어도 5년간 유로존에서 탈퇴시키는 안을 제시하며 압박했다. 이에 슬로바키아 등 동구권 국가들이 가세하기도 했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 브뤼셀/EPA 블룸버그 연합뉴스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 브뤼셀/EPA 블룸버그 연합뉴스
유로존 잔류를 위해서는 세제·노동시장·연금 등의 개혁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국내에 알린 것이 그리스 정부로서는 역설적 성과가 됐다. 협상 타결 뒤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는 “부담은 사회정의에 입각해 공평하게 분배돼야 한다. 위기 동안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부담이 지워져야 한다”며 국내 특권층을 겨냥한 개혁을 시사했다. 그는 “우리는 오래된 올리가르흐(특권 재벌)를 제거하기 위한 급진적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더 가혹한 조건의 구제금융안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리스의 시리자(급진좌파연합) 정부로서는 국제 여론을 환기하는 간접적 성과를 얻은 면도 있다. 채권단의 요구안을 국민투표에 부쳐 부결을 이끌어내는 ‘벼랑 끝 전술’을 통해, 독일의 비타협적 압박에 대한 국제적 비난 여론이 확산됐고, 앞으로는 독일이 주도하는 국제 채권단이 그리스를 마냥 밀어붙일 수 없는 환경이 조성됐다. 협상의 결과로 받게 될 구제금융 규모는 애초 요구보다 훨씬 늘어난 860억유로가 됐다. 이 돈도 결국 채무상환에 대부분 쓰이기는 하나, 그리스 경제가 숨 쉴 공간을 더 넓혀주는 의미는 있다.

치프라스 총리가 이끄는 시리자 정부는 이제 칼날 위에 선 채 양날의 칼을 휘두르게 됐다. 구제금융안에 부과된 재정개혁 등을 국내에서 순조롭게 이행하지 못하면 실각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벌써부터 연립정부 내에서 올해 안에 새로운 총선이 치러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하지만 국민투표까지 거치며 벼랑 끝 협상을 어쨌든 성공시킨 시리자 정부가 개혁 이행의 고비를 넘긴다면 유로존 내에서 입지는 굳어질 수 있다.

■ 독일은 승리했나?

독일은 자신들이 요구하던 모든 조건을 관철시켰다. 하지만 반드시 승리라고는 할 수 없다. 유럽연합의 균열, 특히 프랑스와의 관계에 적지 않은 불화를 가져왔다. 협상 과정에서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독일이 제시한 그리스의 유로존 일시 탈퇴안에 대해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하느냐 마느냐만 있지, 일시적 탈퇴는 없다”며 독일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프랑스는 협상 내내 긴축을 밀어붙이는 독일보다는 그리스와의 원만한 합의를 종용했다. 이탈리아의 마테오 렌치 총리도 “이걸로 충분하다”며 그리스가 더이상의 모욕을 받아서는 안 된다며 독일의 강압적 태도에 반발했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행정부도 협상 과정에서 줄곧 독일을 압박했다.

메르켈 총리는 협상 타결 뒤 기자회견에서 이번 합의안을 1차대전 뒤 패전국 독일에 엄청난 배상금을 물린 1919년 베르사유 조약에 비유하는 질문을 받는 등 비판에 시달렸다. 그는 “나는 내가 직접 처리하지 않은 역사적 사건을 놓고 비교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비켜가야 했다.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은 “이 타협에서 승자도 패자도 없다”며 “나는 그리스 국민들이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하지 않고, 다른 유럽 사람들도 체면을 잃지 않았다”고 에둘러 말했다.

독일 사회당 출신으로 유럽의회 내 ‘사회민주주의진보연대’ 지도자인 마르틴 슐츠 유럽의회 의장은 협상 타결 직전에 “오늘 유럽은 칼날 위에 서 있다”며 “유로존은 산산조각 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유로존이 산산조각 나는 위기는 간신히 넘겼으나, 이런 위기를 격화시킨 독일은 유럽연합 내에서 지도력에 큰 상처를 받았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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