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노동당 선거 ‘좌파 올드보이’ 독주

향후 영국 정치 지형의 시금석 될 ‘노동당 선거’
‘태풍의 눈’으로 떠오른 정통 좌파 제러미 코빈
‘2위’ 앤디 번햄보다 32%p 앞서며 단독 질주
‘중도 개혁파’ 대표 좌파 토니 블레어, 코빈 당선 경계

다음달 12일 치러질 영국 노동당 대표 선거가 향후 영국 정치 지형의 중대한 시금석이 되고 있다. 노동당은 1929년 총선 이후 보수당과 번갈아 집권하며 사실상 양당 체제를 형성해 왔다. 노동당은 그러나 2010년 총선에서 13년만에 보수당에 정권을 내어준데 이어, 지난 5월 총선에서 또다시 참패하면서 위기 의식이 높아진 참이다.

노동당은 대표 선거를 한달 앞둔 12일, 당 대표 선출에 참가할 투표 참가자 등록을 마감했다. <비비시>(BBC) 방송은 이날 등록 유권자가 당원, 노조원, 시민 등 모두 61만753명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전했다. 노동당은 지난 5월 총선 이후 신규당원 또는 등록 지지자가 수만명이나 늘어나면서 세가 불어나는 양상이다. 영국 정치 이념의 불균형에 대한 시민사회의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모두 4명의 후보가 출사표를 던진 이번 노동당 대표 선거에선 제러미 코빈(66) 의원이 ‘태풍의 눈’으로 떠오르고 있다. 코빈은 사회주의자 캠페인 그룹,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 국제앰네스티, 전쟁중지연맹 등에서도 활동하고 있는 정통 좌파 정치인이다. 11일 공개된 여론조사에서 코빈은 후보 지지율 53%를 얻어, 2위인 앤디 번햄 의원(21%)보다 무려 32%포인트나 앞서며 단독 질주하고 있다.

투표가 시작되기도 전에 선거가 과열되면서, 극심한 노선 다툼과 여러 잡음들도 함께 불거지고 있다. 등록 유권자 61만여명 중 16만5000여명이 막판 24시간 동안 한꺼번에 등록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코빈을 당선시키기 위한 외부 세력의 개입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실제로 노동당은 투표 참여 신청자 가운데 1200명이 다른 당 지지자로 밝혀져 유권자 등록을 거부한 바 있다.

같은 노동당 출신인 토니 블레어 전 총리는 13일치 <가디언>에 실은 기고에서 “만일 코빈이 당 대표가 된다면, 다음 총선은 1983년이나 2015년 때의 참패가 아니라 어쩌면 노동당의 ‘절멸’을 의미할 것”이라고까지 주장했다. 중도 개혁을 강조해온 블레어 전 총리가 강성 좌파인 코빈 의원의 대표 선출에 우려를 표명한 것이지만 도가 지나쳤다.

앞서 10일엔 배리 시어먼 의원이 “나는 보수당 지지자지만 코빈 후보를 뽑을 것이다. 보수당 집권을 5년 더 연장시키는 데 3파운드면 헐값이다”라는 이메일을 받았다며 선거 중단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코빈 후보 쪽은 “유권자수 증가와 코빈 지지율 상승은 민주주의일 뿐”이라며 의혹을 일축했다.

조일준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