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마케도니아 국경 경비대가 그리스와 접경지역인 남부 제브젤리아 인근의 국경선에서 철조망을 넘어 밀려드는 이주 난민들을 막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마케도니아는 대다수가 시리아 난민인 이들의 북유럽행 시도를 결국 막지 못하고 국경을 재개방했다. 제브젤리아/AP 연합뉴스
메르켈-올랑드 회담 직후 발표
어느 나라를 거쳤는지 상관안해
다른 유럽국가들 동참 여부 주목
어느 나라를 거쳤는지 상관안해
다른 유럽국가들 동참 여부 주목
독일이 내전을 겪고 있는 시리아 출신 난민을 모두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동안 유럽 주요국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는 난민 정책을 획기적으로 전환한 것이다. 다른 유럽 국가들에도 동참을 압박하는 효과가 나타날지 주목된다.
24일 독일 정부는 모든 시리아 난민들은 어느 나라를 거쳐 유럽에 들어왔는지에 상관없이 독일에 머물 수 있다고 전격 발표했다고 영국 <인디펜던트>가 보도했다. 독일 정부는 또 현재 자국 내 시리아 난민들에 대한 추방령을 전면 철회하고, 시리아 출신 망명 신청자에게는 유럽의 어느 국가에 첫 발을 들여놨는지를 묻는 서류 작성도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독일의 이런 결정은 24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베를린에서 만나 유럽의 난민 문제와 우크라이나 사태 해법 등을 논의한 정상회담 직후에 발표됐다. 메르켈 정부의 ‘시리아 난민 전폭 수용’ 결정은 1990년 제정된 이후 유럽연합 난민 수용 정책의 근간이 되어온 더블린 조약의 적용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조처다.
더블린 조약은 제네바 난민협약(1951년) 등의 적용을 받는 난민의 경우 그들이 처음 발을 들여놓은 유럽연합 회원국이 그들을 수용하고 보호한다는 내용이다. 애초 특정 국가에만 난민 신청이 편중되는 현상을 억제하고 회원국들이 난민 수용에 균등한 책임을 지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최근 지중해나 발칸반도를 거쳐 유럽으로 몰리는 난민들의 절대다수가 이탈리아와 그리스에 첫발을 들여놓으면서, 이 두 나라와 다른 유럽연합 회원국 간에 갈등이 커져왔다.
독일은 이미 유럽 최대의 난민 수용국이다. 올해 상반기에만 시리아 출신 4만4417명을 난민으로 받아들였다. 올해 이주자 수용 인원은 80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독일이 시리아 난민에게 국경을 더욱 활짝 열면서, 지금까지 더블린 조약을 내세워 시리아 난민의 입국을 거부해온 다른 유럽연합 국가들에 상당한 압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유럽연합 국경 경비기구인 프론텍스의 집계에 따르면, 지난 7월 한달만도 10만7000여명이 지중해와 발칸반도 등을 통해 유럽에 들어왔다.
영국 난민위원회의 애나 머즈그레이브 지원담당관은 “독일의 이번 발표는 매우 의미심장한 것으로, 영국 정부도 비슷한 성명을 발표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까지 영국 정부는 난민의 상륙을 막으려 애쓰면서 그들을 밀입국 업자들의 손에 방치했는데, 그건 아주 못된 행태”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앞서 23일엔 오스트리아의 제바스티안 쿠르츠 외무장관이 유럽행 난민들의 경유 거점이 된 마케도니아를 방문한 뒤 “더블린 조약이 고약하게 작동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실질적으론 더이상 작동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메르켈 독일 총리는 지난 16일 “난민 문제가 그리스 경제 위기보다 유럽연합에 더 큰 도전”이라고 밝혀, 그리스 구제금융 합의 이후 자신의 핵심 정책 의제가 불법이주 및 난민 문제가 될 것임을 예고한 바 있다. 한편에선, 메르켈 총리가 그리스에 대한 3차 구제금융 협상 과정에서 강경책을 고집했다가 역풍을 맞은 뒤 난민 문제 해법을 주도하면서 유럽연합에서 리더십을 유지하겠다는 복안이 깔려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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