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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난민 800도 아니고 800000이라는데”…독일 온정 속 불안

등록 2015-09-08 20:23수정 2016-04-04 23:00

김인숙 소설가의 현지 르포
이불 뒤집어쓴 어른…구토하는 아기 난민
베를린 서쪽의 투름슈트라세에는 라게조(LaGeSo)가 있다. 난민 심사와 정착을 담당하는 베를린시 기관이다. 6일 오후, 라게조 앞에는 난민 천여명이 모여 있었다. 골목을 들어가면서 처음에는 몇명인가 싶던 난민이 수십명으로 늘어났다. 나중에는 수백명, 천여명으로 불어났다. 중동 출신으로 보이는 난민들은 자신의 심사 순서를 위해 초조하고 불안한 모습으로 긴 줄을 서 있었다. 자원봉사자들이 갖다 주는 빵과 음료수를 받거나, 이불을 뒤집어쓰고 거리의 맨바닥에서 잠들어 있었다. 베를린의 기온이 급속도로 떨어져 쌀쌀한 가을이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거리에 누운 사람들, 그 사이에서 꼼지락거리는 아이의 발이 보였다. 아이가 뭔가를 잘못 먹었는지 거리에서 고개를 떨군 채 구토를 했다. 어른들이 우울한 얼굴로 아이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그들이 태어난 나라를 떠나 난민으로서의 여정을 시작한 후, 난민인 엄마와 아빠가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었던 유일한 일은, 바랐던 일은 오직 살아남는 것뿐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마침내 안전한 어딘가에 도착할 때까지 살아남는 것, 살아서 버티는 것. 오직 살아 있는 것.

살았다는 기쁨, 합법신분 희망 품고
베를린 난민심사 기다리는 긴 행렬

아일란의 참혹한 죽음 뒤 온정 쇄도
독일 시민들, 난민들에 대문 열어

포용 뒤편 고개 든 극우파의 반발
휴머니즘은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그리하여, 그들은 다행이다. 그들은 어쨌든 거기까지 도착했고, 무언가를 기다릴 희망이 생긴 것이다.

마이클 아즈마인은 가나 부모님 밑에서 태어나 이제 생후 4개월이다. 아기는 베를린의 베를리너 본플라트포름 난민캠프에서 태어났다. 가나 내전을 피해 조국을 떠나온 마이클 부모의 난민 여정은 어느새 14년째다. 기나긴 여정 중에 마이클의 부모는 어린 자식이 먼저 세상을 뜨는 것을 보기도 했고, 또 새로운 아이를 얻기도 했다. 마이클의 가족은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 가나를 떠나 첫번째 도착지였던 이탈리아에서 그들은 12년 동안이나 살았지만 결국에는 합법적인 신분을 얻지 못하고 독일로 떠나왔다. 그들은 어쨌든 베를린까지 왔고, 이 국제적으로 개방된 도시가 그들을 완전히 받아줄 날을 기다리고 있다. 희망이 남아 있다는 소리다. 2008년에 문을 연 루도 지역의 난민캠프에서만 마이클을 포함해 다섯명의 아기가 태어나, 희망의 상징이 되었다.

여기까지 오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대부분의 난민들이 원하는 곳에 이르지 못했다. 땅에 발을 붙여보지도 못한 채 목숨을 잃었다. 난민 브로커들은 난민을 태운 배를 바다에 그대로 버렸고, 오스트리아의 냉동차 안에서는 집단으로 숨져 있는 난민들의 주검이 발견됐다. 난민센터의 직원인 이자벨라는 내게 난민센터를 안내하던 도중 담담히 말했다. “저분은 아내가 죽었어요. 저분은 미사일 폭격으로 팔 하나를 잃었지요.”


온정과 함께 파고든 우려…독일은 지금 “미안하다” “불안하다”

7일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이 가자시티의 해변에서 시리아 난민 아이 아일란 쿠르디를 형상화한 모래조각에 꽃을 놓고 있다. 터키 해변으로 숨진 채 떠밀려온 세살난 난민 아기 쿠르디의 사진은 세계인에게 난민들의 고통을 상기시켰다.
 가자/AFP 연합뉴스
7일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이 가자시티의 해변에서 시리아 난민 아이 아일란 쿠르디를 형상화한 모래조각에 꽃을 놓고 있다. 터키 해변으로 숨진 채 떠밀려온 세살난 난민 아기 쿠르디의 사진은 세계인에게 난민들의 고통을 상기시켰다. 가자/AFP 연합뉴스
그리고 아일란 쿠르디. 아기는 터키 해변에 엎드린 채 숨져 있었다. 아기는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담고 거기에 고요히 누워 있었다. 전쟁과, 폭력과, 절망과, 극한의 슬픔을 안고. 남겨진 자의 부끄러움을 고스란히 증거하면서. 불행히도, 참혹하게도, 견딜 수 없게 부끄럽게도, 그렇게 죽어간 아기는 아일란뿐만이 아니다. 우리가 사진 위에, 이름 위에 날개를 달아줘야 할 아이는 아일란 쿠르디만이 아니다.

아일란의 사진이 보도된 후, 독일 시민사회의 반응은 온정과 관대함을 넘어 적극적이고도 완전한 포용의 자세로 발전했다. 텔레비전 뉴스에서는 기차를 타고 도착하는 난민들을 향해 환영한다고 소리치는 뮌헨 시민들의 모습이 반복적으로 보여졌다. 비에 젖은 난민들은 비보다 더 큰 감동에 젖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마침내 독일인 것이다. 독일은 현재 유럽연합(EU) 국가들 중에서도 난민 수용정책이 가장 개방적이고 적극적인 나라다. 프랑스의 칼레에서 난민들이 수용소 같은 텐트 시설에서 수감자 같은 생활을 하는 동안 독일에서는 난민들에게 거주할 곳과 먹을 것과 입을 것과 쓸 돈과 생활의 자유를 줬다. 난민 지위를 인정받는 일정한 과정을 거친 후에는 교육의 기회와 취업의 기회도 주었다. 이제 독일 시민들은 심지어 자신의 집 문까지도 열어주었다. 시민들은 난민 가족들을 자신의 집에서 살게 하고, 난민 아이들을 자신의 아들이 활동하는 축구클럽에 초청하거나 생일파티에도 초청했다.

극우파뿐만 아니라 보통 시민들도
난민에 대한 뜨거운 온정 한편에
독일 미래에 대한 수심 깊어보여

슈피겔 “휴머니즘적 태도 언제까지”
난민유입 사태 근본적 해결책 주문
캠프 대표 “서로 이해할 기회 마련해야”

8월31일 잡지 <슈피겔>은 ‘난민 사태의 압력 앞에서 어느 편이 승리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커버스토리에서 이 온정에 넘치는 시민들을 ‘양지’라고 명명했다. 국민적 위기마다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극우 정파와 극단적 인종 분리주의자, 신나치주의자들을 ‘음지’라고 명명한 것에 대응해서이다. 기사는 이 양지가 “양심의 가책이나 역사적 채무감을 넘어 무언가 선한 일을 한다는 기쁨”으로 난민들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매우 인상깊은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독일은, 베를린은, 역사의 극단적인 희비를 보여주는 나라이고 도시이다. 2차 대전의 참혹한 과거를 안고, 통일을 이루었고, 그 통일의 대가를 치러나가면서 발전했다. 전후 독일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 가장 강대국으로 성장했다. 스스로의 상처를 인정하고, 그걸 극복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난민을 대하는 독일 시민들의 태도는 역사에서 진 빚을 갚는다는 정도를 넘어, 보다 근본적인 휴머니즘이다. 그것이 더욱 나은 독일을 위해 고무적이라는 게 <슈피겔>의 분석이다. 그러나 기사는 곧바로 이어 묻는다. ‘이 휴머니즘적인 태도가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내가 베를린에 온 것은 7월 초, 작가 레지던스 프로그램 참가차였다. 당시 독일은 그리스 구제금융 사태로 시끄러웠고, 많은 독일 친구들이 독일이 그리스에 대해 좀 더 관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을 하는 걸 들었다. 관대한 것은 바로 그렇게 말하는 그들이라고 믿어졌다.

그러나 이 난민 사태에 관한 그들의 태도는 달라 보인다. 자신의 집 문을 활짝 열어줄 만큼의 뜨거운 온정이 있는 반면, 이 사태가 초래할 독일의 미래에 대한 우려도 깊었다. 누구도 인간적인 온정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는다. 그 어느 누구도 아일란의 죽음에 대해 슬픔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올 한 해 동안 독일에 유입될 난민의 숫자가 800도 아니고 8000도 아니고 800000이라고 하면 문제가 다르다고 여긴다. 그리스 사태에 관대한 태도를 보였던 내 독일 지식인 친구는 내게 물었다. “만일 당신의 나라에 그토록 많은 난민이 들어온다면 당신은 어떻겠어요?” 그는 다시 한번 강조했다. “80만이라니까요.” 고백하건대 나는 곧바로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엄청난 쇼크를 넘어 패닉에 가까운 일일지도 모른다.

온정이 뜨거운 감정인 만큼, 그에 대한 공포도 마찬가지다. 올해 상반기 동안 베를린에서 일어난 난민 공격 사건은 지난해에 비해 거의 네배가량이나 급증했다. 그들은 난민캠프에 불을 지르고, 돌을 던진다. 유화적인 난민 정책을 보이는 메르켈을 향해서는 ‘조국의 배신자’라고 욕을 한다. 이 말은 나치 시절에나 사용되던 말로,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모욕이고 욕설이다.

그들은 난민들이 그들의 일자리를 뺏고, 문화를 더럽힐 것이며, 결국 독일을 엄청난 카오스 상태로 만들 것이라고 믿는다. 극우파, 혹은 극단적인 인종 분리주의자들만의 얘기가 아니다. 감상적인 휴머니즘만으로는, 그러니까 자기 집 문을 열어 난민 한 가족 정도를 받아들인 것과 같은 태도로는 이 엄청난 난민 유입 사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할 거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태도만으로는 또다른 아일란의 죽음을 막을 수 있게 될 거라고도 믿지 않는다. 그들은 보통 시민들이고, 난민캠프의 이웃들이기도 하다.

난민캠프의 대표인 안드레아 코펠만은 그런 현상을 묻는 내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웃들의 우려와 공포를 이해한다고 했다. 그리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미안한 것은 우선 목숨을 걸고 그들의 나라를 찾아오는 난민들에 대해서이다. 절박하게 다다른 나라에서는 사실 그들을 완전히 맞이할 준비가 제대로 안 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안한 것은 그녀의 이웃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생각에 따르면 문제는 오직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가 마련되지 못했기 때문일 뿐이다. “이것은 이해의 문제이고, 서로가 얼마나 더 많은 정보를 공유하고, 더 많이 적극적 만남의 기회를 갖느냐의 문제일 뿐입니다.” 그렇다. 이것은 이해의 문제이고, 또한 준비의 문제이다. 정책의 문제이고, 비용의 문제이고, 결국 서로가 서로를 포용할 수 있는 충분한 문화적 토대의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죽음을 건너온 난민들을 다시 한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상징적인 말이 아니라 현실 그대로의 말이다. 우리는 누구도 죽음을 상상할 수 없다. 전쟁은 현실의 죽음이다. 그 전쟁을 피해, 오직 삶을 위해 떠나온 길 위에서 맞이하는 또다른, 더 참혹한 죽음을 무슨 수로 상상할 수 있을 것인가. 내게 난민캠프에서 일하는 친구를 소개해준 독일 대학생은 난민 사태를 이야기하다 말고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 인간적인 슬픔과 부끄러움 앞에서 나 역시 슬프고 부끄러웠다.

안드레아의 “미안하다”는 말도 마찬가지였다. 이 엄청난 절망과 고통 앞에서 누가 안 미안할 수 있나. 유럽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우리나라라고 해서, 우리라고 해서 안 미안할 수 있나. 그저 남의 나라 얘기라고 할 수 있나. 남의 나라에만 그 책임을 부가할 수 있나. 독일에는 탈북자들도 있다. 그들도 난민이다. 그들에 대해서는 안 미안한가.

180여명이 수용된 루도 지역의 난민캠프에는 어린이 약 70명이 있다. 이 캠프는 현재 독일에 유입된 전체 난민 중 약 5%를 수용하는 베를린의 30여개 캠프 중 하나이다. 내가 캠프를 방문한 시간이 점심시간, 가족을 잃거나 간신히 가족 중의 한 사람을 지킨 아이들이 서로서로 어울려 빗자루를 들고 장난을 치고 있었다. 아이들은 어느새 모든 것을 잊은 것처럼 밝아 보인다. 그러나 그럴 리가 있겠나. 밖에서 여전히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는 한, 누구도 그 상처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안드레아는 내게 투름슈트라세에 가보기를 권한다. 캠프에 도착한 사람과 아직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차이를 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투름슈트라세의 거리에서 먹은 것을 토해내고 있는 난민 아기를 보았다. 그건 캠프와 대기소의 차이가 아니라 절망적인 죽음과 간신히 붙잡은 실낱같은 안식의 차이였다. 투름슈트라세에 있는 그 수백명의 난민들 사이에는 고깔을 쓰고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고 있는 자원봉사자도 보였다. 돌아오는 길, 고작 내가 할 수 있는 생각은 미안하다뿐이었다. 그래서 더욱 미안했다. 미안하고 미안했다.

김인숙 작가는

김인숙 작가는 1983년 단편소설 <상실의 계절>로 등단했다. 장편소설 <먼 길>로 한국일보문학상을, 단편소설 <개교기념일>로 현대문학상을, 단편소설 <바다와 나비>로 이상문학상을, 소설집 <그 여자의 자서전>으로 대산문학상을, 소설집 <안녕, 엘레나>로 동인문학상을, 단편소설 <빈집>으로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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