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용 거실 한편을 헛간처럼 별도로 막아놓은 런던의 원룸
런던 원룸 월세 평균 184만원…중심가는 476만원
‘임대료 제한’ 여론 비등…집권 보수당은 ‘부정적’
‘임대료 제한’ 여론 비등…집권 보수당은 ‘부정적’
“사교적이고 마음이 열려 있으며, 느긋하고 긍정적인 성격의 사람을 원합니다.”
22살 영국 청년 조 퍼두지는 런던에서 방을 구하기 위해 방 구하기 사이트인 ‘스페어룸’을 뒤지다가 이런 내용의 광고를 봤다. 런던 동부에 있는 이곳은 집을 여러 사람이 나누어 쓰는 형태였는데, 임대료는 공과금을 별도로 내는 조건으로 월 480파운드(약 89만원)이었다. 퍼두지는 이곳에 직접 가 보고서는 왜 광고에서 세입자의 성격이 좋을 것을 강조했는지를 알게 됐다.
퍼두지가 쓸 수 있는 공간은 공용 거실 한편을 헛간처럼 별도로 막아놓은 곳에 놓인 매트리스 한 개였다. 공용 거실의 소파 바로 뒤에 있는 공간이라서 프라이버시가 보장될 리 없으니, 성격이 매우 낙천적이지 않으면 견디기 힘든 곳이었다. 퍼두지는 “처음에는 방을 아무리 둘러봐도 침대가 없길래 어디냐고 물어보니 구석을 가리키더라”며 “구석에 가서 고개를 박고 보니 움직일 수조차 없는 좁은 공간에 매트리스 하나가 있었다”고 말했다. 자선기관에 취직한 퍼두지는 결국 다른 곳을 찾아보기로 했다.
영국 <가디언>과 <데일리 메일>에 최근 소개된 퍼두지의 사연은 런던의 임대료가 얼마나 터무니없이 비싼지를 보여준다. 지난달에는 32살 정보기술(IT) 업체 종사자가 런던의 집세를 견디지 못해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집에서 영국 런던에 있는 직장까지 비행기를 이용해 왕복 5시간 반을 들여 통근하고 있는 사연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영국 부동산 업체 컨트리와이드에 따르면, 런던의 집세는 원룸 월세 평균 가격이 1000파운드(약 184만원)이다. 중심가의 월세는 평균 2583파운드(약 476만원)에 이른다. 임대료 상승도 계속되고 있어서 지난 7월에도 4.6%가 또 올랐다. 런던 시민들이 소득 중 임대료로 쓰는 돈은 30~50% 정도에 이르는 것으로 보인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런던 집세가 너무 비싸다 보니, 퍼두지의 경우처럼 집주인이 헛간 같은 곳을 만들어서 임대하는 현상도 생기고 있다. 그리고 이 중 상당수는 불법 건축물이다. <비비시>(BBC) 방송은 2009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이런 헛간 같은 공간에서 화재가 난 경우가 438차례에 이르고 사망자도 13명에 달한다며, “오늘날 사람들이 공장과 헛간 같은 곳에 살고 있다니 (산업혁명 시대 빈곤층의 참상을 그렸던) 찰스 디킨슨의 소설이 떠오른다”고 이야기한 소방관의 말을 전했다.
런던뿐만 아니라 세계적 대도시들도 지나친 임대료 상승에 대한 나름의 해결책을 내놓고 있다. 독일 베를린은 지난 6월부터 지역 평균보다 10% 이상 올리지 못하도록 집세 상승 제한법을 확대 시행했다. 미국 뉴욕시는 7월30일 시 산하 ‘아파트 임대료 조정위원회’에서 임대료 안정화 아파트를 대상으로 임대 기간이 1년인 아파트의 임대료는 동결하고, 2년 임대 아파트는 임대료 상승폭을 2%로 제한하기로 했다. 임대료 동결은 사상 처음이었다.
런던에서도 임대료 상승 제한책을 추진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영국은 1980년대 마거릿 대처 정부 시절 임대료 제한 정책을 상당 부분 철폐했는데, 다시 임대료 제한 정책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영국 노동당의 런던시장 후보군 중 한 명인 데이비드 라미는 “런던을 이대로 두면 파리 방리외 지역처럼 폭동이 일어날 수 있다. 임대 기간 등의 임대 조건에 대해 조처를 취하는 방법이 있다”며 임대료 제한 정책을 주장했다.
하지만 영국 집권 보수당은 런던 임대료 제한 정책에 대해 회의적이다. 영국에서 임대료 제한 정책은 스코틀랜드에서 먼저 시행될 듯하다. 스코틀랜드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한 스코틀랜드독립당 대표이며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인 니컬라 스터전은 스코틀랜드 몇몇 지역에서 임대료 상승 제한 정책을 실시하는 입법을 하겠다고 최근 밝혔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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