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를 떠나 고무보트에 몸을 싣고 죽음을 무릅쓴 항해 끝에 그리스 레스보스섬 해안에 도착한 시리아 난민들이 앞서 도착한 난민들과 자원봉사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레스보스/전해리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전해리씨, 터키 이스탄불~그리스 레스보스 ‘항해’
정원 20명 배에 50여명…엔진 꺼지자 ‘이제 끝인가’
천신만고끝 그리스 섬에 내린 난민들 “알함두릴라”
터키 이스탄불의 파아티라는 지역에 가면 독특한 풍경과 마주치게 된다. 이 지역의 한 작은 공원에서 유럽으로 가려는 시리아 난민들과 밀입국 브로커들의 만남과 거래가 이뤄진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공원 전체에서 사람들이 커다란 검정 비닐봉지에 무언가를 넣은 채 초조하게 기다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나는 난민들의 탈출 행렬에 동행하고 나서야 그 봉지 안에 든 것이 구명조끼임을 알게 됐다. 봉지를 들고 있는 이들은 모두 그날 안에 브로커의 갑작스러운 호출을 받고 밀입국 배를 탈 곳까지 데려다줄 버스에 서둘러 올라탈 사람들이다.
지난 1일 약속 시간에 맞춰 그 공원으로 가기 전 마지막 점검을 하면서 문득 스스로에게 물었다. 만약 내가 모든 걸 내려놓고 내일 가방 하나만 들고 어딘가로 떠나야 한다면 나는 과연 무엇을 챙겨야 할까.
이번 여정은 1년 전의 인연에서 시작됐다.
터키 작은공원에 검은 비닐봉지 행렬 초조한 기다림 끝 버스타고 해안가로
들이치는 파도에 배에 물차고 표류 배안은 ‘패닉’…몇몇은 물에 뛰어들어
조류덕에 꿈에 그리던 유럽해안 도착 7척 출발, 6척은 돌아가거나 잡히거나
그때 시리아와 국경을 접한 요르단에서 나는 며칠간 어느 비정부기구(NGO)를 위해 사진을 찍었다. 그곳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시리아인 오므란과 파디 형제는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평범한 학생으로 살다가 내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형제가 살던 지역이 정부군에 의해 포위된 상황에서, 여동생의 출산을 위해 병원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어머니가 저격수의 총에 맞아 돌아가셨고 여동생도 유산을 했다. 비극을 겪은 뒤 이들 형제는 요르단으로 피신했다. 그들은 여권을 이미 빼앗긴 상태였고 요르단을 떠날 방법은 도저히 없어 보였다.
그리스 레스보스 섬에 먼저 도착한 난민들과 해안가에 나와 있는 자원봉사자들이 뒤이어 들어오는 배들을 향해 안전한 장소로 배를 몰고 오도록 구명조끼를 흔들어 유도하고 있다.
이들 같은 난민들이 유럽으로 가는 경로는 크게 세가지다.
우선 리비아에서 출발하는 난민 대부분은 아프리카 여러 지역에서 온 경제적으로 매우 가난한 이들이다. 이들은 무법천지 같은 리비아에서 활개치는 브로커들에 의해 리비아 해안에서 가까운 이탈리아의 섬인 람페두사로 보내지는데, 사고와 희생자가 가장 많은 경로다.
두번째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근처에서 출발하는 경로인데, 고객 대부분이 시리아인들로 2014년부터 갑자기 이 길을 통해 유럽행을 시도하는 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그리고 올해 갑자기 ‘각광받는’ 루트가 터키에서 배를 타고 그리스로 건너가 육로로 발칸반도와 헝가리, 오스트리아를 거쳐 독일 등으로 가는 경로다. 난민들의 유럽행 탈출 행렬에 동행해 그 과정을 사진으로 기록하기로 결심한 나도 이 길을 선택했다.
처음에는 천신만고 끝에 이스탄불로 와 있던 오므란과 연락이 닿아 그와 동행하기로 했지만, 이스탄불에 도착한 직후 나는 오므란이 그 전날 밤 갑자기 걸려온 밀입국 브로커의 전화를 받고 이미 해안가로 향하는 버스 안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소총 든 브로커는 ‘뗏목’ 보트 대놓고…“배 몰아본 사람 있소?”이스탄불에서 브로커와 비밀접선 버스 타고 밤새워 남쪽으로 가며 생명같은 스마트폰 배터리를 채웠다
버스에서 내려 해안가까지 5㎞ 타고갈 보트를 메고 침묵의 행군 브로커들은 걸핏하면 총 쏴대고 헬기소리에 풀섶으로 숨었다 배가 조립되자 먼저 타려 몰리고
보트가 해안에서 멀어지면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소리를 질렀다
터키에서 그리스 레스보스 섬으로 향하는, 필자가 탄 보트에 난민들이 초조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너무나 허탈하게 기회를 놓친 것을 자책하면서, 나는 이집트에서의 인연으로 알게 된 시리아인 3명에게 연락을 취해보았다. 하지만 밀입국 시도가 워낙 비밀스럽게 진행되는데다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이 그릇될까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나 같은 사람에게 그들이 마음을 열어주리라는 기대는 별로 하지 않았다.
무엇 때문에 그들이 나를 믿어도 되겠다고 판단했는지는 지금도 물어보지 않아서 모른다. 하지만 8월31일 만난 시리아 난민 바젤과 루나는 나와의 동행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바젤이 급작스럽게 자신의 그룹에 한국인인 나를 끼워넣기 위해 우리는 거짓말을 해야 했다. 내가 북한에서 온 탈북자 출신이고 몇년 전 만난 시리아인과 결혼했으며 이미 유럽에 가 있는 부인과의 재회를 위해 이번 탈출 행렬에 동행하려 한다는, 어찌 보면 허술한 점이 많은 이유를 댔지만 브로커들은 ‘상품’ 하나가 더 들어오는 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어 보였다.
1일 파아티의 공원에서 브로커들을 만난 뒤 몇시간의 기다림이 조금 무료해지려는 순간, 사람들이 갑자기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브로커들이 떨리는 목소리로 사람들을 재촉하는 것을 보면서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에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것을 느낀다. 우리를 태운 버스가 출발한 직후 감돌던 팽팽한 긴장감도 몇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풀려, 여기저기서 나지막이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린다. 대부분은 스마트폰으로 지도를 보며 현재 위치를 확인하거나 앞으로의 경로를 예상하는 내용들이다. 버스는 이스탄불에서 남쪽으로 계속 내려갔다.
그리스 레스보스 섬 해안가에 도착한 난민들이 버린 구명조끼와 부서진 보트가 놓여있다. 앞쪽의 배가 필자가 타고온 보트.
이 시점부터 나를 포함한 모든 이들이 스마트폰의 충전 상태에 극도로 민감하게 된다. 만나는 난민들마다 밀입국 배에 탄 가족, 친지들로부터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할 때 남은 가족들이 받는 스트레스에 대해 이야기를 하곤 했다. 버스 안에 배터리를 충전할 수 있는 자리가 몇개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모든 이들이 조바심을 내며 조금이라도 더 충전하려고 서로 간절히 부탁하는 모습들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하나둘씩 잠이 들었다가도 버스가 멈출 때마다 모든 이들이 두리번거리며 일어나 마침내 도착했는지 확인하려 창밖을 내다본다.
2일 새벽 5시께, 버스가 마지막으로 멈추고 모든 이들이 서둘러 짐을 내려 달빛을 조명 삼아 걷기 시작했다. 어느새 합류했는지 버스 두대가 더 보이고, 총을 들고 있는 브로커들이 네다섯명 정도 보인다. 한참을 걷자 언덕 위에 자그마한 창고가 보이고, 브로커들의 명령에 따라 몇명이 올라가 차례대로 꽤나 무거워 보이는 관처럼 생긴 상자를 꺼내오기 시작한다. 모두 4개의 상자가 나왔고, 모든 남자들이 손을 거들어 해변가까지 5㎞ 남짓,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길을 걷기 시작한다.
여러차례 멈추고, 떨어뜨리고, 쉬었다가 다시 운반하기를 반복한 끝에 해안가 바로 옆에 있는 수풀 곁에 상자들을 내려놓는다. 누군가가 “내 관을 직접 운반하는 것 같다”는 농담을 하자, 지쳐 있던 장정들과 바라보던 사람들이 모처럼 다 같이 웃음을 터뜨린다.
그리고 수풀 안에 들어가 또 한번의 지루한 기다림이 시작됐다.
아침 8시께 마지막 버스에 실려온 40여명이 모터를 가지고 왔고, 밀입국 브로커들의 외침에 몇몇 남자들이 상자를 하나씩 열기 시작했다. 그 안에서 배라기보다는 뗏목에 가까운 공기주입식 보트가 나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모든 이들이 보는 앞에서 배를 조립하기 시작했다. 다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상상이 간다. 저렇게 허술하게 만든 배가 우리의 미래를 걸어야 하는 바로 그 배라는 사실을.
첫번째 배가 완성된 순간, 늦기 전에 타야 한다는 조바심에 사람들이 배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곧바로 이어지는 첫번째 총소리. 순간 그렇게 큰 총소리로 여기까지 온, 모든 걸 망칠 거냐고 속으로 묻지만, 결국 그 작은 마을의 치안을 담당하는 이들도 아마 돈으로 매수되었을 것이라는 누군가의 주장이 신빙성 있게 느껴졌다.
그리스 레스보스 섬 해안가에 막 도착한 시리아 난민 가족이 감격에 겨워 서로 끌어 안고 있다.
그리고 들려오는 헬리콥터 소리. 밀입국 브로커들이 바빠지기 시작한다. 모든 사람들을 수풀 안으로 숨게 하고, 누군가가 조금이라도 반항을 하면 곧바로 총부리를 그 사람의 머리에 대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브로커들이 두사람씩 한조를 이뤄 가방 하나에 짐을 옮겨 담으라고 요구했다. 들어가지 않는 짐은 버려야 한다. 사람들이 마지못해 천천히 움직이자 못마땅한 브로커는 연달아 총 세방을 쏘아댔다.
이어 밀입국 브로커는 모든 이들에게 “집중하라”면서, 일행 중에 이런 배를 몰아본 사람이 있는지 묻고, 만약에 없다면 그 자리에서 배울 의향이 있는 자원자를 찾기 시작했다. 결국, 가장 중요한 순간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배 전체의 운명을 맡겨야 하는 상황이다.
오후 4시 반쯤 브로커들이 급히 사람들을 배 쪽으로 내몰기 시작했다. 다마스쿠스에서 대학을 다니다 나왔다는 오마르라는 친구가 유독 내게 친근감을 보이며 자기와 같은 배를 타자고 했다. 하지만 바젤과 루나가 조금 늦게 해안가로 나오는 바람에 오마르가 탄 첫번째 배를 보내고 나는 두번째 배에 올라탔다. 배 한척당 최대 정원이 20명쯤 되어 보이는데, 우리 배는 거의 50명을 꽉 채워서 움직일 공간조차 없이 서로가 서로의 몸에 얽힌 상태다.
앞서 가던 보트 표류…누구도 돕자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앞서가던 보트가 문득 멈추고 하나둘 배낭을 집어 던졌다 도와주잔 말 차마 못꺼내고…
차오르는 바닷물…신발, 컵으로 퍼내 용케 중심 잡으며 조금씩 앞으로 갑자기 멈춘 엔진 연료 떨어진줄만 휘발유 냄새 진동하고 토악질까지
30분 넘게 표류…‘자칫 이러다간…’ 고마운 조류 만나 “신은 위대하다” ‘유럽’에 닿는 순간 조금도 지체없이 그들은 다시 길로 나섰다 인샬라
미틸리니에 도착한 시리아 난민 가족이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배가 해안가에서 점점 멀어지면서 모든 이들의 얼굴에 복잡한 심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마침내 그 오랜 기다림에서 벗어나 어디로든 움직이고 있다는 희망, 차가운 바람과 출발하자마자 심하게 흔들리는 배 위에서 걱정과 멀미 증상을 보이는 이들, 그리고 흥분해서 끊임없이 소리 질러대는 사람들….
앞서 가던 오마르의 배 위에서 사람들이 무슨 영문인지 하나둘씩 배낭을 배 밖으로 던지기 시작한다. 내가 저 배에 탔었으면 어땠을까, 아찔해진다. 그리고 잠시 후 그 배의 엔진이 완전히 꺼져버렸는지 배는 표류하기 시작했다. 그 옆을 지나던 우리는 도와주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수 없다는 죄책감을 느끼며 스쳐 지나간다. 아마도 나를 포함해 많은 이들이 똑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그리고 우리도 여기서 멈추면 끝이라는…. 조금은 이기적인 생각에 아무도 멈춰서 도와주자는 말을 차마 꺼내지 못하고 배의 속도를 그대로 유지한 채 절망에 빠진 옆 배를 그저 바라보며 계속해서 갈 길을 재촉해야만 했다.
조류가 생각보다 강했다. 우리 배를 조종하던 마흐무드가 최대한 옆에서 물이 들어오지 않도록 끊임없이 방향을 조종하지만 물은 조금씩 차오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계속 기도하는 소리가 들리고 어떤 이들은 신발, 컵 등 쓸 수 있는 모든 물건을 이용해 물을 밖으로 퍼내려 했지만 들어오는 물이 퍼내는 물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다. 배에 탄 사람들은 과연 우리가 끝까지 갈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하고 패닉 상태에 빠져들었다.
배가 빠르게 움직이자 배의 앞쪽이 조금씩 들리면서 무게중심이 점점 뒤쪽으로 쏠린다. 서로 밟고 밟히면서도 팔 하나 움직이기도 힘든 상황에서 파도에 한번 잘못 부딪히면 이 배가 순식간에 뒤집히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었다. 어떻게든 모두가 나름대로 중심을 잡으며 용케 우리는 조금씩 전진했다. 어쩌면 큰 사고가 일어나지 않고 목적지에 도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려는 찰나 엔진이 멈춰버렸다.
그리스 레스보스 섬의 주도인 미틸리니에서 한 시리아인 부부가 공원 앞 벤치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있다. 수만명의 난민이 몰려든 미틸리니의 공원이나 공터에는 텐트를 치고 노숙을 하는 난민들이 많다.
마흐무드는 재빨리 연료가 떨어져 그런 것이라 판단하고 여분의 휘발유를 붓기 시작했다. 긴장 때문인지 연료통에 들어가는 양보다 배 안으로 쏟아지는 양이 더 많다. 그러잖아도 배 안에 가득 차 있던 물에 휘발유까지 더해져 멀미를 하던 이들이 이내 토하기 시작한다.
문제는 연료가 아니었다. 물이 끊임없이 배 안으로 들어오면서 엔진에 연결된 휘발유 통에 물이 조금씩 들어가 섞이면서 나타나는 증상이어서, 이런 종류의 모터에 기본 지식이 있던 나는 적어도 이런 상황에서는 엔진이 다시 점화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목적지이자 그리스 영토인 레스보스섬까지는 2㎞도 채 남지 않은 가까운 거리인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이대로 가다가 일어날 수 있는 시나리오는 대략 세가지다. 끊임없이 표류하다 언젠가는 그리스나 터키 해안경비대에 의해 구조되는 상황, 조류가 우리를 조금씩 밀어서 레스보스섬에 무사히 도착하는 경우, 그리고 최악은 흠뻑 젖어 있는 우리가 바다의 차가운 공기에 저체온증으로 하나둘씩 심각한 상태에 빠져드는 상황이다. 그렇게 30분 넘게 표류하다 절박해진 몇몇은 물에 뛰어들어 배를 밀어보려 했지만 강한 조류와 사람들의 무게에 쉽사리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배는 다행히도 조금씩 레스보스섬 쪽으로 떠밀려 가기 시작했고, 마침내 섬의 최북동쪽 해안에 도착했다. 여기저기서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 또는 “알함두릴라”(신의 가호에 감사를)를 외쳐댔다. 난민들이 기쁨에 넘쳐 그토록 염원하던 유럽에 도착한 그 순간에 환호하는 모습을 보며, 나 또한 가슴이 뭉클해지고 먹먹해졌다.
평소 무슬림 여성들 특히 시리아인들은 사진 찍히는 것에 극도로 예민한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 순간만큼은 그들도 신경쓰지 않고 나를 향해 밝게 웃었다. 그 순간만큼은 전통에 구애받지 않고 너무나 힘들고 위험한 여정을 마치고 난 한 인간으로서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리아 난민 이동 경로
그날 같은 해안가에서 출발했던 7대의 배 가운데 오직 우리 배만 그리스에 도착했다. 대부분 터키 해안경비대와 경찰에 잡혔고, 오마르가 탄 배는 터키 해안으로 되돌아갔다. 오마르는 그 이후 두번의 시도를 더 한 뒤에야 그리스 섬에 도착했다고 내게 문자로 알려왔다. 이스탄불에서 브로커들에게 돈을 지불한 지 꼭 2주 반 만에 성공한 경우로, 아주 드문 일은 아니라고 한다.
유럽 땅에 도착한 난민들은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다시 길로 나섰다. 모든 이들이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계속해서 조금이라도 더 앞을 향해서 걸어가야 하는 것이다.
앞으로도 수많은 난관에 부딪히겠지만 그들이 항상 말하곤 하는 이 한마디로 그들은 묵묵히 그 길을 이겨낼 것이다. 인샬라.
▶ 현재도 시리아 난민과 함께하고 있는 전해리 작가의 취재를 ‘뉴스펀딩’을 통해 도울 수 있습니다.
그리스 레스보스 섬 해안가에 막 도착한 시리아 난민 가족이 감격에 겨워 서로 끌어 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