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파리 연쇄테러가 난 6곳 중 한 것인 카히용 카페. 사진 조일준 기자
조일준 기자의 파리 테러현장 르포
파리 연쇄테러 나흘째인 17일 오전(현지시각), 프랑스에서 가장 큰 이슬람 사원인 ‘라그랑 모스케 드 파리’(La Grande Mosquee de Paris)는 무슬림이 아닌 외부인들에게 굳게 문이 닫혀 있었다. 정문 앞에선 사원 안내자가 방문객을 통제했다. 안내자에게 “앗살람 알라이쿰”(알라의 평화를 기원한다는 뜻의 아랍어) 하고 인사부터 건네자, 그도 환한 표정으로 “알라이쿰 앗살람” 하며 화답했다.
낯선 동양인에게 “무슨 일로 왔냐”고 묻는 그에게 정중하게 “한국에서 온 기자다. 이번 비극적인 사건과 관련해 무슬림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며 원장 성직자 인터뷰를 요청했다. 예상은 했지만, 작은 기대감도 여지 없이 무너졌다. 인터뷰는커녕 사원에 들어갈 수도 없었다. 정문 양 옆으로 길게 이어진 담벽의 보조 출입문은 “모든 강좌가 취소됐다”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모스크 앞에서 막힌 기자는 <한겨레> 만이 아니었다. 노르웨이의 신문사에서 왔다는 기자 2명도 안내자에게 취재 요청을 거절당한 참이었다. 동병상련을 느꼈다. 그들에게 “무슬림 사회의 목소리를 대변할 만한 취재원을 찾았느냐”고 묻자, “아직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웰컴 투 더 프로블럼스(문제거리들이 있는 곳에 온 걸 환영한다)”는 우스갯말로 답했다. 어떻게 할 거냐는 물음에 그들은 “우리도 뭘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했다.
파리 아랍문화원도 취재가 어렵긴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이 곳에선 원장 인터뷰를 요청할 수 있는 원장 비서의 전자우편 주소를 얻을 수 있었다. 현대식 건물로 지어진 아랍문화원 앞에는 소총의 총구 그림 밑에 “우리 프랑스 무슬림들은 테러리즘에 반대한다”는 문구가 쓰인 수십장의 포스터들이 눈길을 끌었다. ‘테러 반대’라는 믿음은 똑같지만, 아랍계 무슬림 프랑스인들은 이번 테러 사건을 비아랍, 비무슬림 시민들보다 훨씬 더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지난 13일 연쇄테러에서 최초의 총격이 있었던 프티 캉보쥬 식당과 바로 앞 건너편의 카히용 카페는 서민주택인 유럽식 아파트들이 밀집한 좁은 길의 교차로에 있었다. 저렴한 집값 덕에 아랍계를 비롯한 외국인 주민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다. 그 곳에도 어김 없이 수많은 촛불과 꽃무덤 앞에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방송사 카메라 장비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파리에 11년째 살고 있는 한 한국 교민은 “이 곳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거나 행인이 많은 번화가가 아닌데 왜 테러 표적이 됐는지 안타깝다”고 말했다.
칼리옹 바 앞에 쌓인 추모 쪽지 중에는 지난 1월 ‘이슬람 비하 표현’을 이유로 표적 테러를 당한 프랑스 풍자잡지 <샤를리 에브도>가 ‘샤를리베르티(샤를리+자유의 합성어), 평등, 박애’라고 적은 만평도 있었다. 그러나 유럽에서 무슬림 인구가 가장 많은 프랑스에서조차 상대적 박탈감과 소외감을 느끼는 무슬림 서민들에게 그런 가치는 현실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특히 사회적, 경제적 양극화가 심해질수록 빈민층과 소수집단의 처지는 더 열악해지게 마련이다. 이번에 연쇄 테러를 당한 추모 현장에서 꽃을 들고 “사달라”는 눈짓을 보내는 이들도 아랍계 젊은이들이었다.
추모와 연대의 중심인 공화국광장 가운데 25m 높이의 마리안 청동상 기단 위에는 각각 자유, 평등, 박애를 표상하는 여인 석조상들이 있다. 그 중 ‘평등’을 상징하는 여인상의 입에는 검정색으로 크게 ‘엑스(X)’자가 그려져 있었다. 누가 왜 그랬는지 말하는 사람도, 묻는 사람도 없었다.
파리/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프랑스 최대 이슬람 사원인 ‘라그랑 모스케 드 파리’(La Grande Mosquee de Paris)는 외부인들의 방문을 통제하고 있다. 사진 조일준 기자
지난 13일 파리 연쇄테러로 시민들이 숨진 프티 캉보쥬 식당(왼쪽)과 바로 맞은편 카히용 카페. 사진 조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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