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프랑스 북부 칼레에서 이민자들이 극우정당 국민전선(FN) 대표인 마린 르펜 얼굴이 나온 선거 포스터 앞을 지나가고 있다. 마린 르펜은 6일 열린 광역지방자치단체인 레지옹 1차 선거에서 이민자들이 많은 칼레가 포함된 노르파드칼레피카르디에서 지사 후보로 나섰고, 국민전선은 40% 넘는 득표율로 이 지역에서 1위를 했다. 칼레/AFP 연합뉴스
“마린 르펜 국민전선(FN) 대표가 차기 대통령 선거를 위한 중요한 발판을 마련했다.”
프랑스 광역지방자치단체인 레지옹(region) 1차 선거에서 극우정당인 국민전선이 약 28%의 득표율로 1위에 오르자, <아에프페>(AFP) 통신 등 주요 외신들은 마린 르펜 대표가 차기 대선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했다고 평가했다. 국민전선은 지난 6일 열린 선거에서 13곳의 레지옹 가운데 6곳에서 1위를 차지했다.
프랑스는 레지옹 선거에도 결선투표제를 적용하기 때문에, 최종 결과는 오는 13일 결선투표 때 결정된다. 집권 사회당의 마뉘엘 발스 총리는 7일 국민전선의 최종 승리를 막기 위해 레지옹 2곳에서 자당 후보를 사퇴시키고 대신 경쟁 정당인 중도우파 공화당 후보를 지지해달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이 이끄는 공화당은 연대를 거부했다. 국민전선이 1차 투표에서 1위를 한 레지옹 6곳 모두에서 승리를 할 수는 없겠지만, 2곳 정도의 레지옹에서는 이길 듯 보인다. 국민전선이 광역지자체인 레지옹 선거에서 1곳 이상이라도 승리해 지자체 정부를 구성하게 되면, 이는 사상 최초의 일이다.
국민전선의 선거 승리 배경에는 파리 테러라는 돌발 변수도 작용했지만, 국민전선이 소수 우익정당에서 최근 주류 정치세력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제3당의 지위까지 올라섰기 때문이다. 2011년 아버지 장마리 르펜에게 당 대표 자리를 넘겨받은 마린 르펜은 당을 대중적 정당으로 바꿔나가고 있다.
군인 출신 장마리 르펜이 1972년 창당한 국민전선은 비교적 성공적인 극우정당이기는 했지만 소수파라는 위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장마리 르펜은 “홀로코스트(유대인 대량학살)는 역사의 사소한 일부” 같은 반유대주의 발언으로 유명했다. 또 “인종적 불평등은 논쟁거리가 되지 않는다”며 인종이 평등하지 않다는 취지로 발언을 했으며, “이민자 유입 완전 중단” “기요틴(단두대) 부활” 같은 주장도 했다.
그러나 마린 르펜은 “국민전선이 우파 유권자뿐만 아니라 프랑스인 전체에 호소하는 거대 대중정당이 되길 바란다”며 아버지의 극단주의 경향과는 거리를 뒀다. 올해 5월 아버지가 홀로코스트 발언을 반복하자, 마린 르펜과 국민전선은 장마리 르펜을 당에서 제명했다. 마린 르펜은 공격 대상을 무슬림으로 옮겼다. 대신 인종을 문제 삼기보다는 이슬람 문화를 집중 공격했다. “부르카와 베일이 프랑스에서 넘쳐난다. 2차 대전 당시 (나치의) 프랑스 점령이 떠오른다”며 이슬람 문화가 프랑스에 위협이 된다는 식이었다.
파리 테러 뒤 르펜은 “이슬람 전체주의”를 거론하며 “프랑스 모든 여성이 베일을 강제로 써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1차 레지옹 선거 승리 뒤에는 프랑스의 근본 가치로 자유, 평등, 박애와 함께 세속주의를 들며, 이슬람에 대한 경계 심리를 자극했다. 국민전선 주최 대회에도 과거와는 달리 참가자들 중에 스킨헤드는 눈에 띄지 않고 백인 이외의 인종들도 참석한다고 영국 <비비시>(BBC) 방송은 전했다.
10%가 넘는 실업률과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 같은 외부적 환경도 르펜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프랑스 뉴스 사이트인 <뤼 89>의 공동 창립자인 피에르 아스키는 “사회주의자들은 파리나 리옹, 릴 같은 주요 도시를 빼고는 선거에서 모두 지고 있다. (한국의 중간 정도 지자체인) 데파르트망 선거에서 지더니, 이제는 레지옹에서도 질 판”이라며 “전통적 우파도 마찬가지다. 사르코지의 당도 혼란에 빠져 있다”고 <뉴욕 타임스>에 말했다.
국민전선이 수사적 측면뿐만 아니라 근본 성격에서도 변했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있다. 프랑스 방송사인 <프랑스 24>는 국민전선은 ‘이민 축소, (유럽연합 주도 회원국 간 이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솅겐조약 폐지, 사형제 부활’ 등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면서, “자신들은 극우라고 불리기를 꺼리지만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적이고 보호주의적인 정당’”이라고 평가했다. 안드레아 맘모네 런던대 교수는 <가디언>에 기고한 글에서 “국민전선이 쓰는 말이 예전보다 수용 가능해진 정도가 되었지만 이념 자체가 온건해진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마린 르펜이 2017년 대선에서 이기려면 대선 1차 투표에서 1위를 해도 결선투표에서 사회당과 공화당의 연합전선을 극복해야 한다. 2002년 대선 때 장마리 르펜은 좌파와 중도우파 연합전선에 밀려 낙선했으며, 마린 르펜도 이 관문을 뛰어넘기는 아직은 쉽지 않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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