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솅겐 체제가 붕괴하기 직전이다.”
25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8시간 동안 격론을 벌인 유럽연합(EU) 내무·법무장관 회의가 끝난 직후 요하나 미클라이트너 오스트리아 내무장관이 한 말이다. 벨기에의 한 고위 외교관도 “(협상) 테이블 위엔 나쁜 선택지들만 남았다. 지금대로 갈 수는 없다는 회원국들의 합의가 있다”고 전했다.
영국과 아일랜드를 제외한 유럽연합의 모든 회원국이 자유로운 국경 통과를 보장한 솅겐조약이 벼랑 끝에 몰렸다. 위기의 뿌리는 지난해 유럽을 뒤집어놓은 대규모 난민 유입이다. 이날 회의에선 대다수 회원국이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에 지난해 5월부터 1년 시한으로 인정한 개별 국가들의 국경 통제를 2년 더 연장할 것을 요청했다.
네덜란드의 클라스 데이크호프 이민장관은 “1년 전 우리는 (난민 위기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하면 솅겐 체제가 압박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으며, 이미 지금 그런 상태다”고 주장했다. 영국 <가디언>은 솅겐 가입국들이 현행 조약의 긴급통제권 조항을 근거로 조약의 효력을 2년 더 유예할 수 있지만, 이는 솅겐 체제에 대한 최후의 일격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럽 난민 위기의 최전선인 그리스가 난민 유입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회원국들의 불만은 급기야 그리스를 솅겐조약국에서 당분간 제외하자는 제안으로까지 비화했다. 스웨덴의 안데르스 위게만 내무장관은 “만일 한 나라가 의무를 다하지 못한다면 솅겐조약과의 연결고리를 끊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압박했다. 미클라이트너 오스트리아 내무장관은 “유럽에서 최대 규모의 해군을 보유한 그리스가 터키와의 해상 국경을 방어하지 못한다는 건 신화같다”고 거들었다.
그러잖아도 걷잡을 수 없이 밀려드는 시리아와 이라크 난민들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그리스는 발끈했다. 야니스 무잘라스 그리스 이민장관은 “그리스가 유럽연합의 ‘비난 게임’에서 희생양이 되고 있다”며 “수천명의 난민이 그리스에 발이 묶인 인도주의 위기는 결국 유럽 전체의 위기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유럽연합은 지난해 12월 정상회의에서 합의한 유럽국경해안경비대(EBCG) 창설의 구체 방안을 올해 상반기 안에 확정하기로 했다. 현재 유럽연합 국경 감시기구인 프론텍스를 대체할 이 조직은 해당국의 사전 승인 없이도 해상에 자체 병력을 투입할 수 있어 벌써부터 주권 침해 논란을 낳고 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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