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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끝까지 변명 일관한 나치 전범 아이히만

등록 2016-01-28 20:00수정 2016-01-29 16:18

“나는 책임있는 지도자 아니다”
사형판결 뒤 탄원서 통해 항변
홀로코스트 추모일 맞아 공개
국제 홀로코스트 추모일인 27일 독일 베를린 의회에서 열린 추모행사에 참석한 앙겔라 메르켈 총리(왼쪽 맨 앞줄 오른쪽)와 요아힘 가우크 대통령이 나란히 서서 이날 연설을 한 홀로코스트 생존자 루트 클뤼거(오른쪽)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다. 베를린/EPA 연합뉴스
국제 홀로코스트 추모일인 27일 독일 베를린 의회에서 열린 추모행사에 참석한 앙겔라 메르켈 총리(왼쪽 맨 앞줄 오른쪽)와 요아힘 가우크 대통령이 나란히 서서 이날 연설을 한 홀로코스트 생존자 루트 클뤼거(오른쪽)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다. 베를린/EPA 연합뉴스
“책임있는 지도자들과, 그들의 손아귀에서 한낱 도구로 일할 수밖에 없었던 나 같은 사람들 간에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집단학살을 주도한 혐의로 이스라엘 법원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나치 친위대 중령 아돌프 아이히만은 이렇게 주장하며 선처를 호소했다. 1962년 5월29일 이츠하크 벤츠비 당시 이스라엘 대통령에게 쓴 탄원서에서 이 악명 높은 나치 전범은 “나는 책임있는 지도자가 아니었다”고 항변했다. 이틀 뒤, 그는 처형됐다.

아돌프 아이히만
아돌프 아이히만

파란색 잉크로 눌러쓴 아이히만의 친필 탄원서가 27일 국제 홀로코스트 추모일을 맞아 처음 공개됐다. 이스라엘 대통령실이 공개한 문서들은 몇주 전 대통령 기록물 정리 작업 도중 발견됐다고 <뉴욕 타임스>가 전했다.

3쪽짜리 탄원서에서 아이히만은 1961년 진행된 공판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하급 관리에 불과했던 자신은 지시를 따랐을 뿐이며, 상급자들이 저지른 범죄에 자신이 책임을 지는 것은 부당하다는 내용이었다. 아이히만은 벤츠비 대통령에게 “내가 절대로 인간적 감정에 휘둘리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며 “잔혹 행위를 목격한 뒤 즉시 다른 곳으로 전근을 신청했다”고 변론했다. 아울러 자신은 유대인들에게 자행된 범죄를 혐오하며, 책임자들이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법원의 판결이 정당하다고 볼 수 없다. 재판장과 대통령에게 사면권 행사와 사형 집행 중지를 요청한다”는 호소로 탄원서를 마무리했다.

1962년 5월29일 이츠하크 벤츠비 당시 이스라엘 대통령에게 쓴 탄원서
1962년 5월29일 이츠하크 벤츠비 당시 이스라엘 대통령에게 쓴 탄원서

탄원서를 받은 벤츠비 대통령은 이틀 뒤 법무장관에게 보낸 서한에서 “모든 자료를 검토한 결과 아이히만을 사면 또는 감형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고 통보한다. 바로 이날 밤 12시, 아이히만의 교수형이 집행됐다.

54년이 지나 레우벤 리블린 이스라엘 대통령은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이 탄원서를 공개했다. 그는 “아이히만의 악행에 고통을 겪은 이들에게는 단 한순간의 친절함도 주어지지 않았다”며 “그들에게 ‘악’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현실이었고 고통이었다”고 말했다. 유대인 출신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아이히만처럼 사고를 멈춘 채 국가권력의 지시를 성실히 수행한 인간들이 엄청난 비극의 가해자가 됐다며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한 바 있다.

아이히만은 유대인 집단학살 계획인 ‘최종 해결’을 주도한 인물 가운데 한명으로, 종전 당시 전범수용소를 탈출해 1950년 아르헨티나로 도피했다. 1960년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 요원들에게 붙잡혀 이스라엘로 호송돼 재판을 받았다.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

■ 연관기사 : 안네 프랑크 수용 아우슈비츠 의무병 출신 90대 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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